2. 술의 장미-10

공장생활의 단편 -일이야기

by 이규만

무척 궁금해서 정화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어떻게 되긴 멀찍이 서서 뱀이 갈 때까지 기다렸지. 자식이 지나가는 데 꽤 오래 걸리더라고.”

“정화 씨는 꼭 그러더라. 술 마실 때 군대 이야기 빼놓지 않고 하더라고. 어디 또 해봐. 내가 다 들어줄 테니.”

나는 아버지나 오빠 말고 처음 듣는 군대 이야기이었지만 영은은 여러 번 들은 모양이었다. 정말 지겨워. 넌더리 나. 또 군대 얘기야? 한 두어 번도 아니고. 그래도 영은은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가 하는 것이니 계속 반기는 걸로 보였다. 말은 그렇게 했으나 전혀 지겨워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외려 같이 동조하며 맞춰주는 쪽이었다.

정화는 신나게 이어갔다. 안 그래도 들어주는 이가 두 명이나 있으니 그런 것 같았다. 탄력을 받았던가. 목청이 약간 올라 술을 먹었는데도 발음이 똑 부러졌다. 훈련받던 에피소드나 좀 전처럼 뱀 이야기가 이어질지 알았더니 갑자기 전혀 다르게 삼천포로 빠지는 느낌이었다. 엉뚱하게 여자 신체 일부를 갖다 댔다. 군대 가는 것이 남자 전매특허인 양 우월하게 말했다. 이제 경험한 걸로는 바닥을 드러냈나. 이를테면 정화가 말한 생리나 애를 낳는 고통을 겪는 여자만의 괴로움과 남자만이 가는 군대를 똑같이 비교하는 부분에 좀 어안이 벙벙해졌다. 나는 그의 군대 이야기가 별로였다.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 부분은 잘못 비교해서 말한 부분이라 지적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말에 대한 반박은 또 다른 이유를 갖다 붙이고 다른 논쟁거리를 불러오리라, 예상했다. 더욱이 술이 들어간 상태라면 괜한 억지를 부리게 될 것 같았다. 관두었다. 호기가 오르면 오기에서 객기로 넘어설 단계이고 술자리가 한자리에서 오래 지속되면 밟는 코스나 다름없었다. 둘이 마실 자리에 엉뚱하게 낀 내가 무얼 길게 이야기할 자리는 아니다. 그냥 마냥 술만 마시고 최대한 말을 적게 하는 것이 좋았다. 술잔을 붙들고 정화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름 속으로 생각에 잠겼다.

정화가 말한 남자만 가는 군대는 사회가 정한 제도적인 일부분뿐이다. 그리고 여자 부분에서 잘못 해석한 부분이 있는데 여자는 성장기나 그 시기에 꼭 겪어나가야만 하는 신체의 고통이 남자와 다르게 따로 있다. 결혼하여 임신하고 애를 낳을 시기에는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워 잘못하다가는 목숨이 위태로울 때도 빈번히 발생하기도 한다.

남자는 군대가 가기 싫으면 자해한다거나 여호와의 증인으로 나서기도 하고 혹은 돈을 들여서 군대 가는 것을 피할 수도 있다. 특히 특권층에 있는 자제분들은 부모네가 병무청에 돈을 처바른다든가, 조기유학을 보내 아예 그곳 나라에 시민권을 따내는 방법을 택하기도 한다. 피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방법은 있다. 내가 만약 이스라엘 같은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군대도 가야 하고 결혼하면 애도 낳아야 하는데 그걸 어떻게 합리적으로 군대 가는 것을 남자들만이 가는 거라고 내세울 수가 있단 말인가. 단지 내가 정화한테 부탁하고 싶은 거는 다음에 누구를 만나 술을 마시며 군대 이야기를 들먹이게 된다면 꼭 애를 낳는 고통과 대등하게 말하지 않았으면 했다. 나도 아직 경험하지 못한 그 숭고한 고통을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 따위와 비교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별로야. 군대 이야기. 재밌지 않으니까 다음부터는 하지 마. 부탁이야. 여자가 애 낳는 거랑 군대랑 뭔 상관이야.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잔을 부딪치다 보니 나도 꽤 많이 술이 들어갔다. 다음 이야기는 흐릿해져 버린 기억의 한 편이었다. 영은이 정화 애인을 부러워하는 이야기를 한참 동안 같더니 이내 금방 바뀌었다. 여러 번 동생 이야기를 들었다. 동생이 종양으로 아파 간호해야 하는데 걱정이야. 병원비도 그렇고. 동생 옆에서 그렇게 고생하는 엄마를 보면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

갑자기 훌쩍거리며 영은의 우는 모습에 정화가 안쓰러워 그녀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어째 영은은 술만 먹으면 집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주당들이었다. 그렇게 셋이 모였으니 한 병 더, 한 병 더 계속 외쳐댔다. 소주 열네 병은 바닥을 드러냈고 그 병들이 마치 파투 난 행사장에 널브러져 있는 모습 같았다. 제대로 세워져 있는 병보다 쓰러져 있는 것들이 더 많았다.

“야, 애숙이 멀쩡한 거 봐. 얼굴색 하나 안 변했어. 와! 정화 씨는 좀 올라갔네. 꺽,”

“뭐야, 내가? 술 발이 이제 오르려고 하는데 뭔 소리야? 자 한잔해!”

“그만해. 너무 늦었어.”

“어디서 모…, 범생 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 꺽. 정화 씨 우리 2차 가자. 2차. 웅?”

영은이 입술을 삐죽 내밀며 토라진 모습을 보였지만 그녀는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취해 정화에게 매달려있는 형국이었다.

그가 결국에는 그만 일어서자며 영은을 부축해서 결국 2차로 온 곳은 노래방이었다. 그 근처에 노래방이 가까운 곳이 있었다. 우선은 술이나 깨자는 거였는데 정화는 나가더니 맥주를 여러 개 들고 들어왔다. 난 별로 노래를 부를 줄 몰랐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만 들었다. 정화는 참 많은 노래를 아는 듯했다. 가수를 해도 손색을 없을 정도였다. 아마 저렇게 노래를 잘 부르니 영은이 반할 만도 했다. 영은은 계속 내게도 노래를 부르라고 권했다. 글쎄. 승동과 같이 노래를 부르러 올지 모르지만, 그랑 오게 되면 그는 무슨 노래를 부를까. 무척 궁금했다. 그리고 전작에 먹은 술이 속을 뒤집어 놓아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거기다 맥주까지 들이켜니 속이 난장판이 되어 버린 것만 같다. 꼭 술을 먹으면 가무가 따라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우리 놀이문화가 발전하지 못한 탓이기도 하다. 늘 술을 마신 뒤에 뒤풀이는 항상 이런 식일까.

기어이 그들이 노래 부르는 것을 한참 지켜보다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내일 일도 해야 하거니와 몸이 이제 처져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어디에 눕고 싶었는데 거기 노래방에서 누울 수도 없고 살짝 화장실을 핑계 삼아 정화와 영은이 눈치채지 못하게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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