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술의 장미 -11

3. '첼로'의 시작

by 이규만

웃고 말았다. 나는 거의 표준말을 쓰는데 최 반장의 사투리가 하도 정겨워 억지 흉내 내다 말았다. 최 반장은 자신도 웃으면서 내가 사투리를 흉내 낸 것에 맞받아주면서 낮에 승동과 있었던 일은 잊어버렸나. 뒤끝은 없는 사람이었다.

걱정이었다. 행여 그 자리에 승동까지 나오면 어떻게 하나 참 부담이었다.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그 자리에 데커레이션 부서 사람들도 몇 사람 낄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어차피 부딪쳐야 할 일은 부딪쳐야 한다.



거리로 따지자면 공장에서 열 걸음조차 되지 않은 다음 골목이었다. 삼겹살 전문 식당이었다. 다들 거기에 모였다. 나는 그 자리가 승동과 나와 낮에 일어난 일 때문에 윗선서 자세한 자초지종 여부를 들어보려는 것과 그렇게 파생되는 갈등을 해소하고자 만든 자리인 줄 알았다. 또한 그걸 빌미로 하여 생크림 반과 데커레이션 부서의 일하는 관계를 지속하고 돈독을 꾀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인 줄로만 생각했는데 분위기가 보니까 꼭 그러한 것만은 아니었다. 최정근 반장과 전녹중 계장이 보였고 작업장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남자도 있었다. 듣고 보니 전에 그만두었다가 다시 오게 된 정경화 씨였다. 언뜻 보기에 첫인상은 서글서글하여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서로들 웃으면서 반갑게 맞아주는 분위기였다. 그제 사 알 거 같았다. 궁극적인 목적은 새로 사람을 맞이하기 위한 환영회 비슷한 거였다. 그 자리에는 나와 갈등을 빚어낸 박 승동은 물론이고 데커레이션부서에 속하는 이는 단 한 사람도 참석하지 않은 자리였다. 모든 것을 다 꿰뚫어 보는 능수능란한 전녹중 계장이 그런 술자리를 주도할 리가 없었다. 참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여자는 나 혼자였다. 원래 영은도 같이 참석하기로 한 자리였는데 몸이 안 좋다고 하여 오지 않았다. 어제의 전작이 힘든 거겠지. 그런데도 난 나와서 일하잖아. 이 계집애야. 나 또한 영은처럼 힘든 상태여서 사정을 봐달라고 해보려 했었지만, 그보다는 승동과 일로 따져 물을까 전전긍긍하던 상태여서 참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상외로 전 계장이 그 낮에 있었던 일은 가볍게 치부하는가 싶었다. 몇 년 전의 회사에서 일본 연수 보내준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일본에 가서, 맨 처음 한 일이 뭔 줄 알아? 수세미로 철판 닦는 일부터 시키더라고. 기술을 배우러 왔으면 힘든 일부터 배우라는 거야. 기초부터. 그런데, 일주일 동안 있으면서 다른 것은 시키지도 않고, 알려주지도 않더라고. 꼴랑 빵 굽는 기술 하나 배우러 왔다 이게 뭔가 싶었어. 회사에서 연수를 왜 일본으로 보냈는가 한참 생각해보기도 하고. 회사에서 몇 주 전부터 일본 연수 보내준다니까 일본어 공부하고 생난리를 피우다 막상 가보면 이게 아닌가 싶지. 데커레이션 부서의 이 제윤 반장도 일본 연수 갔다 왔고 또 생지 반에 있는 남 계장도 다녀왔는데 다 똑같이 철판만 닦고 와서도 회사에 이사나 부장님한테 보고드릴 때는 영 딴판으로 보고 올렸지. 시설이 어마어마하다. 위생적이다. 그렇게. 뭘 배우고 왔나 물어봤을 때는 철판만 닦았다는 이야기는 한마디도 안 하더라고. 나도 마찬가지였어. 거창하게 거기 시설이나 말하고, 일 돌아가는 모습들만 이야기하고 거기서 힘들게 하루 종일 철판 닦았다는 거는 절대 이야기를 안 했지. 그런데 나중에 부장님한테 엄청 혼이 났지. 그리고 왜 거기 가서 철판 닦는 일만 시키느냐, 불만을 이야기 안 했나 추궁하시기에 다 그런 줄 알았지. 그 사람들도 철판만 닦으라고 하면 그것만 한다는 거야. 배우러 오는 연수생 중에 크게 이의 제기하는 이가 있을 줄 알았는데 그냥 일주일 동안 그것만 시켜도 그냥 가더라는 거지. 그리고 자신들한테 보고 들어오는 것도 없고. 연수프로그램을 바꾼 거는 오히려 그들이 우리한테 연락해서 바꿨지. 그것도 한참 이후에 말이야. 정신이 겉치레에만 박혀있어. 아무도 그걸 나서서 말한 이가 없었으니 오죽했겠어. 연수 갔다 와서 물어볼 텐데. 뭐 배우고 왔나? 철판만 닦다 왔습니다. 보고 할 수 없잖아. 케이크에 들어가는 재료나 비책을 배우러 가는 줄 알았던 생각을 뒤집은 연수였어. 빵을 만드는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야. 정신부터 다져야 할 것을. 여기도 힘든 일부터 차츰 올라오게 해야 하는데 인력이 모자라다 보니 땜질로 빠진 자리만 메우다 보니 전혀 체계도 없이 들쑥날쑥 흩어졌어. 우리 일도 체계를 잡아가려면 많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거야. 낮에 일도…….”

아…. 그러다 왜 나와 승동의 이야기가 안 나오나 했다. 결국에는 나의 잘못도 부상하고 작업장에서 그렇게 분위기를 흩어놓고 소리치는 승동의 잘못도 지적했다. 승동은 이번이 벌써 세 번째야. 두 번은 누구와 그랬는지 어떤 일로 그랬는지 밝히지는 않았다. 작업장 내 갈등은 이미 예견된 바지만 아무쪼록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승동에게도 단단히 일러둘 참이야. 그러면서 그의 바람을 토로했다. 이번에 정경화 씨도 나갔다가 이렇게 재입사하는 일이 없으면 한다. 우리의 조직이 항상 불완전하다 보니 장인정신이란 것도 상실되고 매번 외국에서 기초적인 것만 배워 와야 하는 것들이 너무 잘못되어 있다. 인력은 소중하고 조직을 이끌어 가는 사람의 생각이 깨어있지 않으면 이 세계도 온전히 살아남을 수 없다.

전 계장의 말을 듣고 있는 터라 술은 한 잔 못 하고 고기가 판에서 다 타들어 가는 실정이었다. 다들 조금씩은 불편한 자리이긴 했어도 부서장다운 언변에 나는 좀 놀라웠다. 저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까.

술 마시는 분위기는 이대로 가는 게 아무래도 나았다. 몇 번씩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도 분위기 따라 매도되기 십상이었다. 어딜 가려고 해. 아직 안 끝났어. 이래서 윗분들과 술 마시는 것이 이래서 어려운 거구나. 힘들어도 내색조차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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