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 성남 모란 시외버스 터미널
애리 있는 앞에서도 그 아쉬운 뒷소리는 계속 엄마 입에서 흘러나왔다. 애리는 그래도 별로 개의치는 않은 듯했다. 어려서 그런 것인지 몰라도 여자의 의미를 잘 이해를 못 하는 것도 같았다. 늦둥이가 그래도 사랑을 무지 많이 받았다. 그래서 나와 언니는 나이 차가 세 살이지만 애리랑은 일곱 살이나 차이가 났다.
하여간 나는 명절이 싫었다. 남자 위주로 돌아가는 추석이 싫었고 오빠하고 아버지는 장기나 두면서 바둑이나 두면서 소일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여자들은 애리까지 동원하여 이리저리 바삐 움직여도 일이 끝이 없었다. 아버지는 아버지라서 그렇다손 치더라도 오빠까지 손 하나 까딱 안 하는 명절이 싫었다. 일 년에 두 번도 모자라서 할아버지, 할머니에다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 제사에다 각종 경조사까지. 말하기조차 숨이 차다. 엄마는 그 많은 것들을 어떻게 참고 견뎌 왔을까. 그리고 앞으로 언니가 시댁에 가서 겪어야 할 그 많은 제사들을 어떻게 감당할지 생각만 해도 눈앞이 아찔했다. 뭐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언니는 어떻게 잘살고 있을지, 잘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백 년인가 이백 년인가 세월이 또 흐른 거 같았고 많은 회상에 젖어 내 일생의 주변에는 텅 빈 객장으로 쓸쓸히 퇴장하는 느낌을 받았다. 일을 할 때는 몰랐는데 막상 시간이 많아지고 여유작작하였다. 그때 마침 침잠되어 있던 흔적들이 올라와서 괴롭혔다. 항상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얼마간 더 과거로부터 나를 가두어 놓고 그동안 내가 겪은 많은 일들을 엄마나 언니한테나 또한 아버지한테 말한다면 당장 다 때려치우고 집에 들어앉아 있으라, 할 것이다. 예전처럼 좋은 혼처나 알아봐 줄 터이니 시집이나 갈 채비를 서두르라 할지 모른다. 어떻게 해서 그러한 일을 겪고서도 다시 일할 생각을 했나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집을 떠나기 전에 내가 고집을 부렸다면 얼마든지 한 번 더 대학 입학시험을 치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미리부터 정해진 거처럼 입학시험 따위는 염두에 두질 않았었다. 어떻게든 바뀐 생활사에 운명을 맡길 따름이었다.
세상일이라는 것이 그 본위대로 흘러갈 수만 있다면야 더할 나위 없겠지만 항상 주위는 어수선하기만 하고 시끄럽기만 하다. 어느 때부터인가 아성처럼 주위를 맴돌면서 나를 은근히 지배하고 자리 잡은 그녀였다. 가끔은 생각해 보았는데 만약에 마담의 제의를 받아들였다면 지금쯤의 나는 어찌 살고 있을까. 아마도 남자의 두 번째 여자로 살다 본 부인한테 들켜 사회로부터 낙인찍히고 감히 드러내지 못할 속설로 영원히 묻혀 살고 있을지도 몰랐다.
룸에 머물면서 온갖 남자들의 손길을 경험하면서 무뎌진 몸뚱이로 살고 있었을 것이다. 형편없이 찌그러지어 밝은 세계로부터 철저하게 격리되거나 유린당하면서 밤의 문화 속에서 여왕이 되어 군림하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한없이 자책하며 그 세계를 경험한 여자라는 것이 가장 두려운 일이 되어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나락과 끝물로 생을 마감할 것 같았다. 마담은 말했다. 여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다. 못할 것도 없고 그다지 나쁜 것도 없다. 궤변을 진리로 삼으면서 지내는 여자의 삶. -거기서 정신이 퍼뜩 깼다. 곧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했고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무 일 없니? 몸은 괜찮고? 그래도 연락이라도 한번 주지. 넌 누굴 닮아서 그렇게 무심하니? 너 내 속에서 나온 딸 맞아? 전화가 안 되면 편지라도 써주어야 할 거 아냐? 엄마가 너한테 그렇게 못되게 굴었니? 걱정이 돼서 단 하루도 편히 자 본 적이 없어. 애숙아. 애숙아….
수화기의 엄마 목소리는 벌써 울먹거렸다. 계속 반복된 엄마의 음성은 같은 말만 이어졌다. 못된 년. 내가 얼마나 걱정한 줄 아니? 엄마 성화에 못 이겨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공장 내에 생크림 반 전화번호를 받고서야 엄마는 전화를 끊었다. 해줄 말이 있었다면 외려 엄마한테 내가 해줄 말이 많았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를.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걸 참고 견디게 해 준 건 일하고 지내는 시간이었고 월급통장이었다.
성남 모란 터미널에 많은 사람이 북적였다. 명절은 명절인가 보다. 사람들이 고향으로 가기 위해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면. 빵이 들어있는 가방을 움켜쥐었다. 그 가방에는 내가 넉 달 동안 모은 돈의 기록이 적힌 월급통장이 같이 들어있었다. 일백이십만 원이 약간 넘는 돈이었다. 어두운 기억의 잔영들이 날 또 사로잡았다. 무서울 정도로 아득한 공포가 나를 휘감았다. 서울 대합실, 가방, 주점, 마담. -도대체 나는 얼마나 더 시달려야 잊을까. 얼마간 잊었다가, 또 이런 기억들이 어떠한 계기로 되살아나서 날 무섭도록 매도하며 구석으로 몰아붙일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건 나의 깊고 깊은 트라우마였다. 내 성장의 덜미를 붙들고 놔주지를 않는 극한 기억의 공포였다. 차를 탈 때마다 언니를 볼 때마다, 집에 있을 적마다 혹은 집을 떠날 때마다 꼭꼭 따라붙는 후유증의 단편으로 번잡스레 흔들릴 것이다. 항상.
기어코 원주에서인가 차가 휴게소에서 멈춰 있을 때 운전기사한테 라이터를 빌려 화장실에 들어가 월급통장을 불살랐다. 통장이야 얼마든지 다시 만들면 되지. 누가 내 가방을 뒤지거나 멀찍이서 목표로 삼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나는 조금 병적이었다. 괜히 우울했다. 옆에 앉은 할머니가 내 안색을 보고 물어봤다. 어디 불편한데라도 있냐. 간단하게 대답만 했다. 화장실이 급해서요. 차에 화장실이 없잖아. 어쩌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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