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쩌그노트 -19

언니와의 만남

by 이규만

사람의 운명이 얼떨결에 엉겨 붙은 조직체로 이어지거나 학연 같은 것에 결정 난다면 저리도 야단법석을 피우지 않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마음에도 있지 않은 선배 결혼식이 뭔 대수라고.



짐을 풀다가 문득 방을 둘러봤다. 한동안 언니와 내가 함께 쓰던 방이었다. 지금은 애리가 혼자 쓰는 방이었다. 감회에 젖었다. 언니가 떠나고 없던 그때도 이 방을 썼었다. 부모님의 시선을 차갑게 지독하게 외면하던 나였었다. 뭐라도 제발 했으면 좋겠는데. 도대체 왜 그러고 있는 거야. 같이 학교 다닐 때도 말한 적이 있었지. 언니와 마찬가지로 나는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었다. 내가 이화여대에 국어국문학과를 지원하고 합격할 당시만 해도 언니는 마치 나를 작가가 된 것 인양 치켜세워 주었었다. 어이. 전 작가 축하해. 이제 소설만 쓰면 되는 거네. 그러나 그것은 아쉽게도 개밥에 도토리였다.

일만 죽도록 하다 어쩌다 집에 온 언니는 한동안 나를 바라봤다. 보다가 언니도 한 때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가 포기한 때를 일부러라도 내색하려 들었다. 언니가 아무래도 현실의 괴리감 따위를 설명하려는 의도라는 것을 나는 이미 눈치 빤하게 짐작했다. 너도 나처럼 돈이나 벌어. 이것아. 글은 무슨 글이야. 다 소용없다니까.

-예전에는 소설가들이 써놓은 이야기를 보면 참 괜찮았고 나도 그렇게 쓰고 싶었는데 이제는 어쩐지 할 일 없고 시간 많은 사람이 소설가 같아. 부질없어 보여.

학교 다닐 때와는 달라진 언니의 말이었다. 그동안 손 놓은 채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는 것이 답답해질 정도로 초라했었나 보다. 그래도 나는 꿋꿋하게 버텼었다.

-그래도 요즈음은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읽고 있다고.

나는 그래도 내가 언니한테는 만큼은 어느 정도 문학의 격상이나 심도에 이른 것을 내세우려 했었는데 언니의 표정은 좀 전보다 더 굳어지고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흐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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