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일로 괴로운 애숙
언니도 아무도 말할 사람이 없었고 언제가 다시 툭툭 불거져 나올 힘든 가족들의 이야기가 두려웠을 것이 틀림없었다. 나에게만이라도 먼저 이야기하거나 진실은 그게 아님을 밝혀두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는 판단이었을 거였다. 언니가 불임이 되었다는 것을 동생에게만은 이야기하고 싶었을 거였다. 상황은 별로 나아지지 않겠지만 위로가 된다면 언니가 형부랑 살면서 겪은 그의 성격이나 가족의 치부나 그 외의 속 깊은 이야기도 다 들어줄 심사였다. 이 상처가 아무쪼록 빨리 아물어 보통 여자로 살기를 바랄게. 그냥 형부한테나 그의 가족에게나 우리 가족에게나 애가 안 생기는 것은 어떤 병적으로 자연적인 현상으로 받아 주었으면 좋겠어.
“넌 무슨 계집애가 술을 그렇게 잘 먹니? 하여튼 집안 내력이야. 너희 아버지도 그렇게 많이 마시면서 술주정 한번 안 하는 거 보면, 참 희한해.”
아침에 엄마가 나한테 꿀물을 타 주면서 한 말이었다. 엄마한테 미안해서 좀 웃었다. 이제 돌아가야 할 거 같아. 성남으로 돌아가기 위한 채비를 서둘렀다. 애리가 옆에서 물었다. 서운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언제 또 올 거야. 언니. 아버지는 어딜 갔는지 안 보였다. 인사할 기회도 없었다. 언니도 돌아가야 했지만 늦장을 부렸다. 천천히 돌아갈 거야. 며칠 더 쉬다 가야지.
애숙아 잘 살아야 해. 언니나. 아무 말 없이 언니를 안아 주면서 웃었지만 나는 웃는 것이 웃는 게 아니었다. 언니가 그 잘 살란 말이‘넌 남자 잘 만나야 해.’로 들렸다. 아무렴 언니처럼 살지 않을 거야. 남자도 잘 만날 거라고.
일은 하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진전된 것은 없었다. 단지 바뀐 것은 내가 처음과 달리 언니의 돈을 포기했다는 것이고 돌려줄 생각도 없고 애리한테 줄 생각마저도 없었다. 그 아이가 그 큰돈을 가지게 되면 무엇을 할지도 만무했지만, 나처럼 쓸데없는 포부나 궁상을 떨며 행여 아무 일이나 하게 될 희망을 품게 될까 솔직히 두려웠다. 액수는 같아도 화폐 값어치가 낮아지고 언니 때의 이백만 원이나 내 때에 이백만 원이나 혹은 애리 때의 이백만 원이 같을 리 없었다.
언니가 보고 싶지 않았다. 수십 년이 흘러도 언니를 맞대하기가 어려울 거 같았다. 언니 고백을 들은 이후로 집으로 돌아가기가 싫어졌다. 명절이 와도 누구처럼 애지중지 소중한 가족의 일원으로 사랑, 자매애 그러한 것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다. 항상 가족은 부담이었고 여자의 몸으로 태어나 신체 변화에 대하여 대단히 민감해하고 신경질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것이 힘들었다. 잘못하면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괜한 신경을 곤두세워 화를 내기도 하고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고 화가 난 거처럼 옆에 분위기를 망쳐 놓기 십상이었다. 일한 지 육 개월이 다 되어가지만 내 마음은 아직 P 크루아상에 완전히 기운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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