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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만 Aug 03. 2023

작은형의 파우스트 1-3




바람이 있다면 버스가 갈 때까지 가서 종점에서 내려, 그곳에서 따뜻한 커피 한잔을 여유롭게 마시고 ‘토니 블랙스톤’의 두터우면서도 감미로운 저음이 느껴지는 노래를 들으며, 토마스 만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읽고 싶다. 무미건조한 퇴폐라는 비난을 받을지라도 그 노인네의 말년을 쭉 지켜보고 싶다. 어차피 이미 난 폐쇄 공포증을 경험한 바가 있다. 아무도 없는 그 공허가 느껴질 때면 죽음으로 도래하는 이 세상의 끝장이 아침에 집을 나올 때, 아파트 계단 난간에서도 밀려왔었다.

나는 시간적 여유가 너무 없다. 멍하니 앉아서 예전 일을 생각한다거나 영화를 한 편 본다거나, 노래를 들을 때도 스쳐 지나간다. 어쩔 때는 왜 내가 이 일을 선택하였을까 후회가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말들은 하지 말자. 이미 선택된 것이고 누구나 잘못 된 일이라고 느끼면 이미 늦었다는 거를 잘 알고 있다. 굳이 그걸 새삼스레 말해봤자 주어와 술부에서 반복적인 말만 되풀이된다.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만 이라도 글을 계속 썼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내 또 졸음이 쏟아져서 정신을 아득하게 잃어버렸다. 툭하고 강하게 뭔가에 부딪치는 소리에 깨어났을 때는 자판에서 손가락은 허둥대고, 노트북의 모니터는 꺼져있고, 그 몸체의 LED만이 껌벅거리고 있다. 마치 몇 초만 더 있으면 완전히 죽어버릴 거 같이 숨을 헐떡거리고 있다. 그만두거나 포기하는 일이 또다시 생길까 봐, 그 우울과 공허를 삼키고 그냥 지나치고 싶었다. 좌석버스 창으로 들어오는 강렬한 아침햇빛을 차양 막으로 가리고 있었는데 공기가 더워지고 탁해지는 것이 서울로 온 것이 틀림없다. 집에서 출발할 때에는 공기가 맑아서 무척 좋았다. 춥기까지 했었다. 답답해서 윗도리를 벗어던졌다.

 생각한다는 것이 별다른 것이 없는 거 같다. 형식에 구애를 받지 않고 손 가는 대로 글 가는 대로 써내려 가면 그것같이 좋은 것이 없는 거 같다. 좋은 노래 한 곡과 커피 한 잔의 여유이면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왜 토마스 만을 좋아하게 된 걸까. 어렸을 적에 엄마가 사다 준 세계문학 전집에 유독 그 사람이 눈에 띄었다. 발음하기가 좋았다. 부드럽게 토마스…. 긴 머릿결을 쓰다듬어 넘기듯 기분 좋게 부를 수 있는 이름이다.

독창성을 가져야 한다. 일이든 뭐든, 한 가지 독창성은 훗날에 흔들리지 않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중간에 그만둔다거나, 다시 시작하는 일들이 생기지 않길 바랄 뿐이다.

좀 섬세하고 치밀해야 할 터인데 집중력이 많이 저하 됐다. 힘든 하루가 시작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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