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1. 1983~1986년 (0~4세)

아티스트데이

by 나를찾는나


1983년 1월 서울 한 개인 병원에서 내가 태어났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큰 엄마가 내 검은 머리가 나오는 것을 보셨다고 하니

지금까지 엄마와 큰엄마가 친 자매처럼 잘 지내는 이유를 조금 알 것도 같다

인생의 가장 큰 순간을 함께 나눈 사이니 응당 그렇지 않을까?


꿈많던 27살 여인과 늦은 나이에 장가를 가 31살에 첫 아이를 얻은

남자, 그때의 시대상을 감안하면 나는 꽤나 늦된 부부의 장녀로 태어났다


늦은 아이였으니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겠는가

살면서 부모 사랑에 대한 결핍감은 크게 느끼지 않고 살았던 편이었으니

아주 어렸던 갓난쟁이 시절에는 과분하게 넘치게 사랑을 받았겠지







사실 나는 어릴 때의 기억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

단자리 나이 때의 기억은 거의 없다고 보는 편이 맞다



그럼에도 길지않은 인생을 몇년씩 잘게 쪼개어

회고록을 쓰기로 한 것은

마흔이 넘어 이제서야 나를 궁금해하기 시작한

나에 대한 미안함과 'Artist Day'라는 책 덕분이다



회고록을 쓰겠다고 결심을 하고 나서도

게으른 으른이로 몇 주를 지리하게 미루고 미루다가

드디어 오늘, 무거운 노트북을 짊어지고 도서관에 와서

타이핑을 하기 시작했다



회고록을 쓰면서 뭔가 엄청나게 대단한 것을 찾을 거라는 기대는 없다

그저 항상 앞만 보고 달려나가던 내 인생에서

추억과 기억을 더듬어 가는 과정이 주는

어떤 말캉폭신한 정서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정도는 해본다








아무튼, 나의 영아 시절로 돌아가서..


부모님은 넉넉치는 않으셨던 거 같다

엄마는 논밭일을 하시던 가난한 농부의 장녀로 성장하셨고

아빠는 5남1녀의 넷째 아들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실질적 가장이었단다


넉넉치 않은 외벌이에

가난한 시댁으로 돈이 줄줄 새나가고 있으니

여유가 있었을리 만무하다


엄마는 시골 태생인데다가

나이 마흔에 저혈압으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되신 외할머니가 계셨기에

아이를 낳고도 이렇다할 도움을 받을 수 없었고, 서울에는 아는 친척 하나 없었다

되려 어린 여동생을 데리고 상경하여 학교를 보냈기에

이미 큰 아이를 하나 더 키우고 있는 셈이었다



그 당시 남자들은 집안의 가장으로서 돈을 벌어온다는 이유로

술에 취해 현실 도피도 하고

담배 피며 사람들 뒷담화도 하고

짬짬히 숨 돌릴 구멍이 있었을 텐데

가정주부라는 직업이 거의 강제적으로 주어지는 시대였으니

아마 엄마는 숨 쉴 구멍이 당췌 없었을 꺼다

얼마나 갑갑하고 힘들었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에린다



어린 나를 회고하려 했는데 그때의 어린 엄마를 회고하게 되네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린 여자애가 참 짠하다. 꼭 안아주고 싶다







나를 낳고 돌 즈음이 되어 아빠는 1년간 프랑스에 파견을 갔다

낯선 곳에서 엄마 아빠는 엽서를 주고 받았다

그때의 엽서가 어디 있을 텐데.. 그때의 엽서들을 보면 둘은 참 애틋했다



아빠가 귀국하던 날

엄마는 나를 데리고 공항에 갔고 나는 '아빠 아빠' 조잘거리며 아빠를 기다렸는데

막상 아빠를 만나고 나서는

이 아저씨는 누구냐며 엉엉 울었다고 한다

아빠는 그게 많이 서운하셨던지 아직도 그 이야기를 하신다



아빠는 서운하셨겠지만 아빠 없이 보낸 1년은 아기에게는 거의 평생이었을테고

남편 없이 아이를 홀로 키워낸 어린 엄마에게도 사무치게 힘든 시간이었기에

그날 아빠는 그 정도의 천대는 당연히 감내하셔도 되었겠단 생각도 든다







엄마는 낯선 서울에서 홀로 아이를 키우는 게 너무 힘들어서

아이가 둘이나 더 생겼는데 아이를 지웠다고 했다


내게 얼굴을 보지 못한 동생이 둘이나 있었다고 생각하니 궁금해진다

너희가 세상에 태어났다면 어떤 아이들이었을까?

어떤 얼굴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아갔을까?


아이 둘을 하늘로 보낸 엄마는

그 다음에 찾아온 아이는 차마 지우지 못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아이 둘을 보내며 느낀 그 고통을 다시 겪을 자신이 없어서이지 않을까?

체념일까 포기일까



그래서 내 여동생이자 엄마의 4번째 아이는 세상의 빛을 보았다

그때 나는 만 3세를 넘긴 시점이었다



동생과의 나이 차가 꽤 나는 것을 보면

이제 좀 숨을 돌릴 수 있을 시기였기에

엄마는 자신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망각의 동물이라는 이유 덕분에

내 동생은 세상 빛을 볼 기회를 얻었는지도 모르겠다



새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두명의 동생을 보지 못했지만 너와는 함께 내 인생을 보내 게 된 것이

이제와 새삼 나는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