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4. 1992년~1994년(11세~13세)

by 나를찾는나

내가 4학년이 되었을때

엄마는 결단을 내렸다


싫다고 울먹이는 내 손을 잡아끌고

미용실로 가 귀 밑까지 싹둑 머리를 잘라버렸다


나는 졸지에 못생겨졌다

찰랑찰랑 긴 생머리의 소녀는

졸지에 더벅머리 봉순이 언니가 되었다

거울 속 내 모습을 보기가 너무 고통스러웠다


노산에 아이 셋, 갓난쟁이를 돌보며 엄마에겐

아침마다 내 긴 머리를 매만지는 일이

이제는 힘에 부쳤을 꺼다

10년도 넘게 해왔던 수고로움에 결단을 내릴만도 했다



어쩌면 그때 엄마의 힘듦을 내게 설명해줬다면

내 자존심이 한방에 확 잘려버린 듯한 그 마음이

조금은 괜찮았을지 모르겠단 생각도 들긴 한다



내가 머리를 자르자 친구들은 충격을 받았다

아니 내가 너무 충격을 받은 나머지

아마 친구들이 나를 바라보며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꺼라고 스스로 그렇게 느꼈을지 모르겠다



머리를 자르고 나는 바로 전학을 갔다

못생겨진 슬픔과 이별의 슬픔이 겹치며

나는 그때의 감정을 더 과장되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다시 이사를 했다


학군지의 한복판으로 들어갔다

돌이켜보니 그때 부모님은

분양 받은 아파트의 첫 입주를 했다

수도 없이 많은 이사를 전전하고 나서 결혼한지 13년만에 첫 집 매수였다



그런 엄청난 경사를 나는 전혀 알길이 없었다

나는 못생겨졌고 친구들과 헤어졌으며

새로 전학온 학교에서는 너네 아빠 직급이 뭐냐고 대뜸 물어보는 새침하고 도도한 친구들을 만났다

나는 너무 낯설고 슬펐고, 못생겨진 만큼 위축됐다



하지만 새 집만큼은 나도 너무나도 좋았다

반지하에서도 살아봤던 나였다

항상 여동생과 같은 방을 쓰며 살았다

새 집에서는 처음 내 방이 생겼고

책상과 침대가 들어갔다

새 가구와 새집이 주는 행복감이 아주 컸다



처음으로 번듯한 아파트에 살며

중산층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친구들도 전형적인 중산층 티가 났다

깔끔한 옷에 새침했고 계층화에도 익숙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여자아이들은 조숙하다

치마를 입으면 안되고

(전학 첫날 내가 치마를 입고 와서 재수가 없다고 했다)

누구 아빠는 과장인데

우리 아빠는 부장이라는 얘기를 했다

우리 아파트 평수를 묻는 아이들도 있었다


순수한 아이들의 커뮤니티에 살던 나는

새로운 수준의 커뮤니티에 적응하기 위해 나름 애썼다


나도 아파트에 살았고 아빠는 부장이었기에

조건으로만 보면 크게 꿀릴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친구들 앞에서는 자꾸 작아지는 기분은 이상하게 떨치기가 어려웠던 거 같다


내 왕따의 기억과 못생겨짐, 이별, 새로운 환경 등 변화가 휘몰아치며 어느 순간

나를 작게 만든게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는 새 집 입주 1년만에

다시 높은 언덕 끝 주택가로 이사를 갔다


나는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새 가구가 채워진 내 방을 가지며

드디어 깍쟁이 중산층 친구들을

따라가려고 그토록 노력했건만

다시 내 삶이 원점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사춘기가 오는 시점과 겹쳐 나는 많이 우울했다

학교와 학원을 오갈때마다

보이는 그 집의 내 방 베란다를 바라보며

몇번을 멈춰서 바라보며 울었다



나중에 엄마에게 물어보니

그 당시 너무 높은 대출이자 감당이 안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집을 차마 팔수는 없기에

전세를 주고 낡은 빌라로 이사를 하면서

팍팍함에 숨통이 틔였다고 한다



나처럼 엄마도

중산층 사모 커뮤니티에 들어가기 위해

1년간 부단히 노력했었겠지



하지만 외벌이에 시댁으로 야금야금 돈은 새고

아이는 셋이나 되었기에

엄마로서도 눈물을 삼키고 한 결정이었으리라

엄마도 나도 그때의 상실감은 이루말할 수 없었을 꺼다



새로 이사한 집은 정말 가파른 경사를

올라야 하는 곳이라

겨울에 길이 얼때면 차가 경사를 올라가다

바퀴가 미끄러져서 뒤로 차가 밀렸다

나는 그게 너무 무서웠고 무서운 거 이상으로 싫었다







6학년이 되서 나는 안경을 끼기 시작했다

옆으로 누워 책을 보던 버릇 때문에

왼쪽 시력이 크게 떨어지며 짝짝이 시력이 되었다


이미 머리를 자르며 못생겨졌는데

안경까지 쓰게 되면서 + 포동포동한 체형을 갖춰가며

나는 못생김의 요소를 점차 탑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외모의 못생겨짐과 상관없이

내게도 짝사랑의 감정은 찾아왔다



그전부터 나는 이미 몇명을 좋아했던 거 같다

2학년 때인가 한번, 4학년때인가도 있었던 거 같다

하지만 짝사랑의 뚜렷한 기억은 6학년부터이다


나는 그 해만 2명을 좋아했었는데

둘 다 그 나이 때 철없던 장난꾸러기들과 다르게

조숙하고 얌전한 선비 같은 아이들이었다



아마 그 또래의 여자아이들이라면

외모를 떠나서 그런 차분하고 성숙한 남자들을

좋아했을꺼다


첫 번째 남자아이는 미소녀 같은 아이었다


선생님의 검정 브라가 등판으로 비쳐보이는 모습에

남자아이들은 손가락질하며 킬킬 웃었는데

그 아이는 그게 뭐 웃을 일이냐며 한마디 하더니

진지하게 수업에 임했다

그 모습이 정말 멋져보였다

(지금 생각해도 멋지다 캬아~)


두 번째 남자 아이는 우리반 반장이었다

키도 작고 공부도 잘하는 일명 범생이.

나는 그 애가 참 좋았지만

못생긴 내가 좋아한다고 하면 놀림거리가 될까봐

티내지 않고 속으로 열심히 좋아했다


그 아이가 여자 부반장과 친하게 지내는게 상당히 거슬렸지만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던 못생긴 여자에게는

딱히 뾰족한 방도가 없었다


그렇게 말도 못한채 1년이 지났고

나는 졸업을 하게 된다


졸업 사진 속의 나는 참 못생겼다 ㅋ

얼굴에 살이 빵빵이 올라 토실토실하고

머리는 단발인데 어찌나 짧고 촌스러운지

8대 2 가르마를 타고 있고

심지어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그때 나의 심리상태가 반영된 게 아니었을까?

그때의 나는 많은 것들이 불만족스러웠다


아마 그때 내가 가장 불만족 스러운 것은

나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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