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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

by 남상봉

대학교를 가지 못한 분풀이로 전국 각지에 있는 여대라는 여대는 다 찾아다니며, 여대생을 꼬시려 한 기억이 있다.

여대만 골라 다녔다. 성신여대. 덕성여대. 서울여대. 이화여대...

많은 실패를 했다. 왜 여대만 골라 다녔느냐 하면 아무래도 남. 녀 공학보다는 사냥이 쉬울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수많은 딱지를 맞았으며,
"어이없다"는 말도 들었다.

그때, 아마 이화여대로 기억한다. 숙명여대에서 공친 걸음으로 버스를 타고 이화여대로 간 것 같다.

하도 낚시가 안 돼 힘이 빠진 채 간신히 이화 정문을 들어섰다.

많은 여대생들이 활기차게 들어서고 있었다. 지금도 간혹 막무가내라는 말을 듣는데 그때도 막무가내였던 것 같다.

심기일전하여 닥치는 대로 말을 걸고 작업에 들어갔다. 역시 한 명도 걸리지 않았다.

온몸이 녹초가 된 채 운동장 계단에 앉아 있는데 저만치서 한 학생이 외롭게 앉아 있었다.

잠시 후. 나는 개선장군이 되어 학교 문 밖을 그녀와 함께 나왔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즐겁게 얘기를 하다 내가 물었다.

" 무슨 과야?"
"식품 공학과..."
그녀가 대답했다.
나는 알은체를 해야겠기에,
"커피 성분도 연구 하고 그러겠네..."
"그런 건 기본이지. 우리나라 커피 원료는 다 수입이야. 원산은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등등이지..."
나는 그녀가 맞는 말을 하는지 틀리는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렇지. 맞아..."
하고 맞장구를 쳤다.
"넌 서울대라 그랬지 무슨과야?"
"경영학과야."
뭐 이런 대화가 오고 가고 영화를 본 후 의기양양한 우정을 쌓은 채, 후일을 기약하고 우린 헤어졌다.

"크으하..."

집에 도착해서 옷 벗을 시간도 없이 전화를 거는 나의 심정은, 대륙을 제패한 칭기즈칸 보다 더 했을 것이다.

재빨리 폰을 들고 혜령(그녀의 이름)의 목소리를 듣고자,

뚜루룩 뚜루룩~

가는 신호가 왜 그리 더딘지

이윽고...

"네에~영화 다방 혜령입니다..."

ㅜ ㅜ

나는 온몸에 맥이 풀린 채 수화기를 들고 멍하니 서 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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