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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정 Aug 08. 2022

출산이란 것은 나의 원죄

임신출산육아 그 기적의 과정

임신과 출산은 기적이라는 말을 흔히 한다. 그런데 그 뜻을 제대로 느끼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출산 후 산모가 건강한 아이와 함께 병원 밖을 나서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기적 같은 일인지, 대다수의 사람들은 제대로 알지 못한다.

철저한 계획 임신을 했던 나부터도 그랬다. 임신을 확인하고도 기다려야 할 것이 너무나 많았음을.


테스터기 두줄을 확인하고, 일찍부터 산부인과에 가면 처음엔 피검사로 임신호르몬 수치를 확인한다. 초음파에 아무것도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호르몬상 임신이 나오면, 그다음 주에는 아기집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아기집은 있으나 아기가 없을 수도 있고, 둘 다 있지만 착상을 하면 안 되는 곳에 붙어있을 수 있고, 아기는 있으나 심장이 안 뛸 수 있고. 심장은 뛰지만 제대로 연결이 안 됐을 수 있고... 수많은 내장기관과 뇌, 혈관 등이 잘 만들어져야 한다.


그렇게 40주를 채우면 또 출산은 어떤가. 아기와 산모의 맥박이 위험해질 수 있고 출혈이나, 아기 머리끼임, 태변 먹기 등의 위험한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조리원에서는 아기 귀 상태, 항문 딤플 상태, 심장잡음 등 수많은 것들을 확인하고, 여기서 치료가 필요한 아기들도 상당수다. 그렇게 집으로 가서 몇 년을 키워도 늘 조심할 것들 불안한 것들 투성이다.


육아의 과정도 경이롭다. 신생아는 속눈썹도 없고 눈물도 잘 나지 않는데 어느 날 갑자기 속눈썹이 뿅 하고 보이고, 사람처럼 눈물도 흘린다. 난 처음부터 이런 행위가 다 되는 줄 알았다. 아니 생각해본적이 없다는 게 더 정확하다. 


손가락도 움직일 줄 몰라서 주먹을 꼭 쥐고 있다가 어느 날엔 주먹을 펼 줄 알더니, 어느 날부터는 손가락을 하나씩 분리해서 움직일 줄도 알게 된다. 본인의 주먹이란 존재를 발견하고, 입에 넣기 시작하고,

그다음엔 발도 발견하고, 엄마 아빠를 보며 타인을 인식한다. 내 인생에 이렇게 인간의 발달과정을 가까이서 적나라하게 본 적은 없다.


청취자들의 사연 중에 이런 게 있었다. 우연히 라디오에 나오는 노래를 듣고 "우리 아이가 처음으로 노래방에서 부른 노래예요"라는 내용이었다. 아이가 노래방에서 처음으로 부른 노래를 수십 년이 지나도 기억하는 것이 부모란 존재구나. 부모가 되기 전엔 알지 못했던 마음을 한 꺼풀 더 이해하게 되었다.



아기를 낳고 보니, 출산이라는 것은 원죄라는 생각이 든다. 어디까지나 나의 선택으로 생명을 만들고 세상에 태어나게 한다. 종교의 세계 등에서는 어떻게 해석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알고 있는 한 아기는 오롯이 어른들의 선택만으로 그 존재가 생겨나고 그렇게 태어난다. 이 세상에 선택을 해서 태어난 아기는 단 하나도 없다. 


그렇게 마음대로 만들어놨다면, 응당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요즘 말하는 대단하게 물질적인 것을 해줘야 한다거나, 그럴 능력이 없으면 낳지도 말란 이야기를 하는게 아니다. 영문도 모른채 타인의 선택에 의해 존재하게 됐는데 부모로 인해 슬픔과 공포를 느껴야 한다면 너무 슬픈 일이다. 


나는 아기를 낳기 전부터 탄생이란 괴로움이라고 생각해왔다. 살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의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만족스러운 삶을 살았다해도 태어난 이상 고난을 견디고, 수많은 이별을 거쳐야만 한다. 그 이별이란 피할 수도 없고 실로 아픈 것이라 나는 그것이 고통스러웠다. 


적막한 새벽. 문득 옆을 바라보면 아기침대가 보인다. 

멍하니 바라보다가 생각해보면, '아차, 저것은 사람이다. 내가 사람을 만들어버렸다. 대단히 큰 일을 저질러버린 것 같은데... '하는 생각으로 아찔해지곤 한다. 


어떻게 해야 널 만든 책임을 다할 수 있을까. 대신 다 아파줄 수도 없고, 주머니에 넣어다닐 수도 없다. 그저 좀 더 좋은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을 부모가 되어서 온전히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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