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소암 4기 아내와 함께하는 남편의 기록
9화. OK인 줄 알았는데 NG였던 나의 마음.
2023년 6월. 아내가 난소암 4기 판정을 받았다.
3번의 항암과 수술 그리고 남은 3번의 항암을 진행하니 2023년이 지나갔다.
2024년. 유지 항암을 하다가 재발. 새로운 항암 시작. 재발. 수술. 항암. 방사선 치료가 이어졌다.
2025년. 항암. 방사선치료를 병행해도 암과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2023년의 나는 멍했다. 멍한 정신을 부여잡고 병원을 예약하고, 아내 곁에서 함께했다.
2024년의 나는 괜찮다 생각했다. 어쩌면 보통의 삶으로 돌아갈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품었다.
2025년의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내 마음에 어떤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갑자기 욱하고 화가 올라오는 순간이 많아졌다.
대부분의 불똥은 아픈 아내가 아닌 어린아이들에게 떨어졌다.
엄마가 아파도 어두워지지 않고 여전히 철없는 아이들의 행동에 고마워했어야 했는데,
나는 그러지 못하고 야박하게 아이들을 잡았다.
그럴 땐 아내도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혼내고 후회하고, 혼내고 후회하는 순간들이 반복되었다.
엄마가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기 싫다고 짜증을 내는 막내를 보고 화가 치밀던 토요일 아침.
여차하면 또 화를 낼 것 같아서 무작정 집을 나섰다.
동네를 걷다 보니, 저 멀리 정신과 간판이 보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원에 들어갔다. 예약을 하고 와야 된다고 했다.
병원을 나와 걸으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았다.
높은 곳에 있으면 아래를 쳐다보게 된다.
저 아래로 떨어지면 모든 것들이 끝나겠지-라는 단순한 생각이 떠올랐다 사라진다.
아내가 암을 진단받은 이후의 나의 삶은 이러한 생각을 떨쳐내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사랑의 무게만큼, 인생이 괴로워지는 순간이 있다.
그 괴로움이 너무 무거울 땐 일부러 많은 생각을 하지 않으려 했다.
그냥 나의 마음 아래 깊은 곳으로 내려가 홀로 웅크린 채 가만히 있었다.
다음 주에 정식으로 예약을 하고 병원을 찾았다.
친절하게 생긴 의사가 차분하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나는 현재의 상황과 내가 최근에 아이들에게 짜증을 많이 내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진료 전에 했던 설문과 대화를 통해 의사는 심플하게 진단을 내렸다.
'우울증입니다.'
나는 사실 '우울증'은 생각하지 못했고 '공황장애'를 예상했었다.
의사는 '공황장애'가 이유가 불분명할 때 생기고,
나 같은 경우는 아내의 투병이라는 이유가 확실하기 때문에 '우울증'이라고 했다.
덧붙여 지금 나의 상태와 반응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 말해주었다.
그의 입 밖으로 나온 '당연하다'라는 그 말에 순간 울컥했다.
이런 순간을 대비하여 내 앞에 휴지가 놓여 있었지만, 울지 않았다.
'슬프기보다는, 안심했다.'
아내도 힘들 텐데, 아이들도 힘들 텐데 하면서 버텼는데.
이렇게 무너지는 나의 모습을 '당연하게' 받아주는 의사가 고마웠다.
의사는 '도파민'을 억제해 주는 약을 처방해 주었다.
한 달 정도 약을 먹었다. 이전보다 괜찮아져서 상의 끝에 치료를 종료했다.
헤어지면서 의사는 힘들면 언제든지 다시 오라고 했다.
다행히 그 이후로 다시 병원을 찾은 적은 없다.
장모님이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신 적이 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정신과에 가보시라고 했다.
'저도 그래서 약 먹어요.'
나는 진심으로 방법을 알려드린 것이었는데,
나를 바라보는 장모님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들어갔다.
기나긴 아내의 투병을 지치지 않고 함께 하려면 내가 건강해야 했다.
나를 돌보지 않고, 버티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보란 듯이 무너져버렸다.
사람들의 위로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땐 온전히 내가 나를 돌봐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