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이라는 롱테이크

난소암 4기 아내와 함께하는 남편의 기록

by 킵고잉

10화. 삶은 영화가 아니다.


아내가 난소암을 진단받은 이후로 아내의 옆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 보호자 침대에 있다 보니 주로 아내의 옆모습을 보게 된다.

진료를 받으러 병원을 오가는 차 안에서도 신호대기 중에 문득 고개를 돌려 조수석에 앉은 아내를 바라본다.


처음 아내를 만나 사랑에 빠졌을 땐, 한동안 서로의 정면을 빤히 바라보았다.

사랑이 깊어지고 결혼을 하게 되면서 두 사람은 팔짱을 낀 채 앞을 바라보며 살았다.

아이가 태어나고 그들의 인생을 오롯이 책임져야 하는 두 사람은

사방이 캄캄하여 어디를 바라보는지 모르고 살았다.

가끔 고개를 돌려 뒤에서 아장아장 쫓아오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정도였다.


아내가 치료를 시작하고 나서야,

나는 오랜만에 고개를 옆으로 돌려 그간 오랫동안 내 옆을 지켜준 아내를 바라보았다.




긴 치료와 재발에 지친 아내가 어느 날 문득 아이들에게 말했다.


"혹시 엄마가 하늘나라에 가더라도, 너무 슬퍼하지 마.

엄마는 하늘나라에서 너희들이 잘되도록 꼭 지켜 줄 거야."


첫째는 아무 말하지 못하고, 멍하니 있었고.

둘째는 화를 내며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멀리서 그 말을 들으며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래 언젠가 아내와 나 모두 아이들 곁을 떠나겠구나' 하고 '죽음'을 생각했다.


어린 시절 '죽음'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고 그게 뭘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학교에 다녀와 집에 아무도 없을 때, 문득 그 단어가 다시 떠올라.

엄지 손가락으로 귀를 막고, 나머지 손가락으로 눈을 가린 채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로 있다가,

나도 모르게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다.




길이 막힐 때 사람들은 자신이 열심히 하지 않았음을 탓한다.

아내의 치료가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그렇게 생각했다.


어느 날 유튜브를 보다가 성공한 사람들은 마냥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영상을 보았다.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일을 대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내용이었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마냥 열심히 열심히 자신을 다그치는 건

결국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때부터 나는 아내와 함께하는 나의 마음을 돌아보고,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기로 했다.

좋은 생각을 하고, 어깨에 힘을 빼고, 열심히 하겠다는 욕심을 조금씩 내려놓았다.




2025년 6월. 3차 항암을 진행하던 아내의 소변에서 피가 보였다.

병원에 가보니, 다급하게 바로 입원을 시켜주었다.

항암으로 백혈구, 호중구 수치가 떨어진 상황에서 감염이 되었던 것이다.

수혈과 항생제를 맞으며 2주 정도 입원을 했다.


지나고 보니, 그때가 고비였다.

병원에 조금만 늦게 갔더라면, 감염이 잡히지 않았다면, 뭔가 심각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그때 아내와 함께 병원에 있으면서 <암이라는 롱테이크>를 쓰기 시작했다.

3화 정도 쓰고 아내에게 보여주었다.

아내는 눈가가 촉촉해지더니, '잘 썼네'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이 글을 브런치에 올려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2026년 1월. 아내와 나는 여전히 병원을 오가면 새로운 치료를 이어가고 있다.

모두의 삶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내일을 알 수 없다.

다만 오늘 하루를 온전히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할 뿐이다.




병원에서 읽었던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 중 옮겨 적은 문장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시련을 겪는 것이 자기 운명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는 그 시련을 자신의 과제, 다른 것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유일한 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시련을 당하는 중에도 자신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단 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그를 시련으로부터 구해 낼 수 없고, 대신 고통을 짊어질 수도 없다.

그가 자신의 짐을 짊어지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그에게만 주어진 독자적인 기회이다.'


잠들 때마다, 눈을 뜰 때마다 의식적으로 '감사합니다'라고 중얼거린다.


'삶'은 '라이브'다.

'컷'을 할 수도, '재촬영'을 할 수 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