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소암 4기 아내와 함께하는 남편의 기록
8화. 원치 않은 속편. 재발.
한 편으로 끝냈으면 전설로 남았을 영화가 있다. 제작자의 욕심으로 급하게 후속 편을 제작한다. 성공하면 좋겠지만 원치 않은 속편은 감독과 나아가 관객을 괴롭게 한다. 삶도 그렇다. 멈추면 좋겠다 생각하지만 나의 바람과 상관없이 이어진다.
수술 후 3번의 항암을 무사히 마쳤다. PET-CT와 CA125 모두 아내가 괜찮다는 결론을 내어주었다. 수술을 진행한 대형병원에서는 6개월 후 추적 검사 예약을 잡아주었다. 항암을 진행한 병원은 재발방지를 위해 아바스틴이라는 새로운 항암제를 처방해 주었다.
앤젤리나 졸리 덕분에 유명해진 유전자 BRACA 변이가 있으면 몇 년간 먹으면서 재발을 억제하는 제줄라를 보험으로 처방받을 수 있지만 아내의 유전자에는 BRACA 변이가 없었다. 차선책으로 아바스틴을 처방받았만, 보험이 되는 기간이 그렇게 길지 않았다.
오랜 암치료를 진행하면 당연하게도 돈을 생각하게 된다. 다양한 신약이 나오지만 보험 여부에 따라 매번 적게는 몇백만 원 많게는 몇천만 원을 내야 한다. 무엇보다 많은 돈을 낸다고 효과가 그만큼 비례 하는 것도 아니었다.
몇 주 간격으로 외래를 잡고 아바스틴을 맞았다. 그때마다 피검사를 하고 CA-125 수치를 관찰했다. 피검사 후 2시간이 지나면 나오는 그 숫자가 우리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했다.
2시간을 조마조마하게 기다리다 정상 수치가 유지되면 아이처럼 기뻐했고, 조금이라도 수치가 오르면 세상을 모두 잃은 듯 괴로워했다.
처음 한 달 정도는 수치가 잘 유지되었는데, 그 이후로 조금씩 올라갔다. 이때가 나와 아내 모두 심리적으로 힘들었다. '다음엔 내리겠지. 일시적인 거야.' 애써 희망을 부여잡았다.
주위 사람들은 이즈음 아내의 치료가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했다. 이제 조심하면서 일상생활을 유지하면 되겠다고 축하해 주었다. 사람들이 안부를 물으면 길게 말하지 않고, 괜찮게 지낸다고 짧게 대답했다.
인간은 희망을 가졌다가, 그 희망이 다시 좌절되었을 때 더 괴로움을 느낀다. 상처가 겨우 아물기 시작했는데, 누군가에게 다시 그곳을 세게 맞은 느낌이었다.
꾸준히 오르던 수치는 결국 정상 범위를 넘어섰고, 담당 의사는 괴로운 표정으로 재발 판정을 내렸다.
짧았던 희망을 버리고 다시 치료 모드로 전환해야 했다. 어떤 항암제를 써야 하는지, 수술 혹은 방사선을 진행해야 하는지 다양한 옵션을 두고 의사의 판단을 기다렸다.
난소암은 전조가 없어서 진단받았을 때 3-4기 가 많다. 다행히 수술 및 항암 반응이 좋아서 첫 번째 치료는 잘 되는 편이다. 하지만 여기서부터가 문제였다. 난소암의 가장 큰 어려움은 재발이 잘 된다는 것이다. 물론 재발하지 않고 잘 넘어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에게 그런 운은 오지 않았다.
비교적 약했던 표적 함암제 '아바스틴'을 중단하고, 다시 강한 함암제로 변경되었다. 입원이 아닌 외래로 간단히 주사를 맞던 일정이 예전처럼 병원에 입원하여 주사를 맞고 추이를 지켜보는 일정으로 바뀌었다.
끝나지 않는 긴 치료의 과정을 겪다 보면 당연히 자기 연민의 구덩이에 빠지게 된다. 그곳에서 허우적거리며 구덩이에 빠지지 않은 주변을 살펴보면 다들 나만 빼고 잘 지내는 거 같아 보인다. 바깥을 향한 시선을 거두고 내가 빠진 구덩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 구덩이도 사람들이 사는 삶이다.'
여길 당장 벗어날 수 없다면, 구덩이라도 이곳에서 계속 살아갈 방법을 고민해야 했다. 밖을 보고 신세 한탄만 하기엔 아내와 아이들이 너무 가여웠다. 나는 구덩이 안의 삶을 인정하고, 하루하루 잘 지내겠다 결심했다.
아내의 항암과 수술동안 병원생활을 꽤 했다. 그곳엔 다양한 암환자와 보호자들이 있었다. 모두들 구덩이 속에 빠졌지만 마냥 절망에 빠져 괴로워하지 않았다. 그들을 보며 암에 걸렸다고 모든 게 끝난 게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우리 모두는 살아있는 동안 계속 살아나가야 했다.'
우리는 '죽음'을 향해 조금씩 가까워지는 걸까? 아니면, 죽기 전까지 '살고' 있는 걸까?
방점이 매번 바뀌지만, '죽음'과 '삶'은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안부를 묻는 주변 사람들에게 아내의 재발 소식을 전해야 했다. 그들 역시 나만큼 속편을 원치 않았기에 대부분 긴 침묵이 이어졌다. 이때부터 사람들과 연락하는 횟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속편을 굳이 배급할 필요는 없었다.'
뉴스에 흔하게 나오는 타인의 죽음보다, 자신의 손가락 끝 작은 생채기가 더 고통스러운 법이다.
내가 그러면서, 남이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