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이라는 롱테이크

난소암 4기 아내와 함께하는 남편의 기록

by 킵고잉

7화. 편집. 삶을 재구성할 수 있을까?


'인생의 지루한 부분이 편집된 것이 영화이다.'


학교에서 영화를 배울 때 들었던 문장이다. 스토리를 나아가게 하지 못하는 지루한 장면들을 편집에서 잘라내야 관객이 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 있다. 나도 편집을 할 때 정확한 판단이 서지 않으면 커트들을 짧게 이어 붙였다.


살면서 어려운 순간들을 마주할 때마다 비슷한 생각을 했다.


'이 장면을 자르고 빨리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고 싶다.'




아내는 지친 몸과 마음으로 수술 후 남은 항암을 이어갔다. 나는 조심스럽게 이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지나가면 완치라는 행복한 순간이 기다리고 있겠다는 희망을 꿈꾸었다. 희망도 절망도 없는 하루하루를 지내기로 다짐했건만 스멀스멀 올라오는 바람까지 막을 순 없었다.


항암을 하면 1주일에서 10일 정도 입원을 했다. 퇴원을 하면 2주간 집에 있다가 다시 입원을 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퇴원한 2주 동안은 조심스러웠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일상을 즐기기도 했다. 주말엔 아이들과 가고 싶었던 식당을 방문하거나 가까운 곳으로 당일치기 드라이브를 다녀왔다.


차속에서 미소 짓는 아내와 아이들을 볼 때마다 우리가 투병이라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다는 사실을 깜박 잊어버리기도 했다.




아내는 수술을 하면서 암이 발생한 난소를 제거했다. 수술 전 의사가 자녀가 있는지 물었다. 아내는 딸 하나, 아들 하나가 있다고 대답했다. 의사는 미소를 지으며 다행이라고 말했다.


수술 후에 아내에게 갱년기 증상이 올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첫째는 아직 사춘기가 오지 않았었다. 비슷한 시기에 엄마와 딸이 갱년기와 사춘기로 대결할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항암 사이사이 체력이 회복된 아내는 예민해 보였다. 갱년기 탓이려니 했다. 아이들은 엄마의 상태와는 상관없이 예전처럼 짜증을 냈다. 아이들이 아이다워 보여서 차라리 다행이다 생각했다.


드디어 아내와 딸이 부딪히는 순간이 왔다. 아들과 나는 숨죽이며 지켜보았는데, 결과는 엄마의 완승이었다. 아내는 당당하게 딸에게 말했다.


"너 사춘기야? 나 갱년기야!"


나는 이즈음이 특히 힘들었던 것 같다. 암 발병소식을 알고 정신없이 병원을 찾고 항암과 수술을 이어갈 때는 간절한 마음으로 순간순간을 견디었는데,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나니 긴장이 풀렸는지 때때로 아내와 부딪히고 아이들에게 짜증을 냈다.




항암기간 동안 아내에게 조금만 이상한 증상이 보이면 바로 응급실로 오라는 의사의 당부가 있었다. 집에서 항암을 쉬는 동안 아내가 어지럽다고 했다. 하필 그날 막내가 기침을 하고 열이 났다.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바로 응급실로 향했다.


아내는 이석증 판명을 받았다. 다행히 조치를 취하고 약을 먹으니 치료가 가능했다. 동시에 아이는 독감 판정을 받았다. 다행히 엄마에게 독감을 옮기지 않았다. 나는 오전동안 두 병원을 왔다 갔다 하느라 지쳤다.


뭔가 빨리 끝날 거라는 헛된 희망을 가지고는 이런 순간들을 버틸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가족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긴 호흡으로 일상의 순간순간들을 견디어 나가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다. 좋은 영화학교를 나왔고 현장에서 풍부한 경험을 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에 성공한 영화인들이 하나 둘 늘어갔다. 나도 당연히 그들처럼 되리라 믿고 버텼다. 하지만 결과는 그러하지 못했다.


아내가 암판정을 받고 내가 하는 일들을 펼쳐 놓고 살펴본 적이 있다. 어느 것을 지속하고, 어느 것을 포기해야 하는지를 판단해야만 했다. 가장 먼저 포기해야 되는 것이 '영화'였다. 나는 집을 나와 오랜 시간 현장에 머물 상황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현장이 아닌 집에 있었다.


입원기간 밤 8시 30분 정도가 되면 휴게실에 사람들이 모였다. 뭐 하나 지켜보면 다들 일일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고 있었다. 그들은 병실 안에서처럼 지친 표정을 짓지 않고, 드라마 속 이야기에 빠져 미소 지었다. 나는 그 순간 일일드라마의 위대함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나도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지친 사람들이 잠시 일상을 잊고 이야기에 빠져 위로받을 수 있는 영화. 내가 꿈꾸던 순간을 그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일일드라마가 이루는 모습을 지켜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입원을 앞두고 매번 코로나 검사를 해야 했다. 보건소에 찾아가 입원 예약 문자를 보여주면 긴 면봉으로 코를 쑤셨다. 여러 번 했지만, 할 때마다 눈물이 찔끔찔끔 났다. 나는 이렇게 간단한 검사에도 육체의 고통을 느끼는데 수술과 항암을 이어가는 아내는 얼마나 힘들까 하고 돌아보면 아내도 눈물을 찔끔 흘리고 있었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문장이 떠올렸다.


고통 역시 강도에 관계없이 매번 부지런하게 우리를 괴롭혔다. 아내는 지금도 피검사를 위해 주삿바늘을 꼽을 때 눈을 질끈 감고 인상을 쓴다.




그렇게 다양한 순간의 고통들을 성실하게 견디며 남은 항암을 무사히 마무리했다. 아내와 나는 그간 힘든 장면들이 지루하게 이어졌으니 이제 막이 전환되어 해피엔딩이 나올 거라고 내심 기대를 했다.


아내의 투병기간 내내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면, 인생은 정말이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