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이라는 롱테이크

난소암 4기 아내와 함께하는 남편의 기록

by 킵고잉

6화. 미장센. 수술 후의 일상.


수술이라는 큰 산을 넘어서니, 회복이라는 언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는 마약성 진통제를 맞으며 수술 후의 고통을 견디어 나갔다. 처음엔 물도 제대로 삼키지 못했는데 하루 이틀 지나자 죽을 먹고 밥을 먹게 되었다.


회복의 기쁨도 잠시. 대형병원은 남아 있는 수술 환자들의 일정을 위해 차갑게 우리의 퇴원을 재촉했다. 그 차가운 시스템 덕분에 아내가 신속 정확하게 수술을 할 수 있었지만, 막상 떠밀리듯 퇴원을 해야 되는 상황이 오니 그 시스템이 매정하게 느껴졌다.


'사람의 마음은 이토록 간사하다.'




수술 후 2주간의 짧은 회복기를 지낸 후 남은 항암이 시작되었다. 수술로 지친 몸에 바로 독한 항암약이 들어가서 와이프는 이전 보다 더 힘들어 보였다.


수술과 회복기간 항암을 쉬어서 자라났던 그 짧은 머리카락도 새로운 항암이 시작되자 다시 우수수 빠져나갔다.


암이라는 존재가 워낙 생명력과 복제능력이 강하기 때문에 수술과 항암을 병행하여 치료가 진행된다. 전투에 비유하면 수술은 적진에 직접 침투하여 눈에 보이는 암을 제거하는 방식이고, 항암제는 몸 전체에 폭탄을 투하하여 암을 제거하는 방식이다.


전쟁 시 넓은 지역에 다량의 폭탄을 투하하면 적도 죽지만, 선량한 민간인들도 고스란히 피해를 입게 된다. 어떨 때는 적은 전혀 죽이지도 못하고 아군 혹은 자국의 시민들에게 피해를 입히기도 한다.


항암제 역시 때때로 그러했다.




동네 엄마들 사이에 아내의 입원과 수술이 공유되었다. 그렇게 말이 돌고 돌아 결국 우리 아이에게 엄마의 병명이 알려지는 상황은 피하고 싶었다. 첫째에게 엄마가 걸린 병의 이름이 '암'이라고 알려주었다. 아이는 아이 나름의 방식으로 엄마의 병을 이해해 나가려고 했다.


아이의 학교에 상담 선생님이 계신다. 아이는 그 선생님을 찾아 엄마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상담선생님은 자신도 '암'에 걸렸었는데 지금은 괜찮다고, 엄마도 괜찮아지실 거라고 아이를 위로해 주었다. 그 말이 오가며 상담선생님과 아이 모두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아이는 어두워지지 않고 단단해져 갔다.

아이는 아이 대로 그렇게 자신의 시간을 견디어 나갔다.




아내가 먹는 음식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몸에 좋은 음식으로 암을 다스려야 한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좋은 것을 먹어야 하는 것과 동시에 나쁜 것은 먹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이때 나쁜 음식은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 어려웠다.


인터넷과 책을 살피며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용들 간에는 비슷한 것도 있었고, 서로 상충하는 것도 있었다. 아주 까다롭게 음식을 제한하는 주장도 있었다. 의사나 간호사는 날것과 탄 음식만 피하고 나머지는 다 좋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현상유지를 강조했다. 좋은 걸 가려 먹는다고 살이 빠지는 것보다 라면국물에 밥이라도 말아먹어서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반대쪽에서는 극단적으로 음식을 가리고, 특정 채소를 매일 많은 양을 먹어야 한다는 강경한 주장도 있었다. 우리는 다양한 의견들 앞에서 흔들렸다.




병원의 말과 자연치유를 주장하는 말 모두를 들을 순 없었다. 우리는 선택을 해야 했다.


우리는 병원의 말을 듣기로 결정했다. 아내는 몸에 나쁘다고 판명된 음식을 피하고, 그때그때 식욕이 당기는 다양한 음식을 먹었다. 살이 빠져 항암을 이겨낼 체력을 잃는 것보다, 다양한 음식을 먹어 체력을 비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아내가 수십 년을 좋아한 음식을 끊거나 줄이는 행위는 쉽지 않았다. 때때로 아내는 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약간의 눈치를 주었지만 결국은 떡볶이를 사 와 아내와 함께 먹었다. 극단적으로 몰아세워 스트레스를 만들기보다는 오늘은 치팅데이라는 면죄부를 두어 이왕이면 기분 좋게 먹는 쪽으로 생각했다.


그런 지점에서 우리는 죽이 잘 맞는 공범이었다.




남은 항암을 이어가며 아내는 매번 힘겹게 그 순간들을 마주했지만, 나는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봐야만 했다. 환경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고 있던 아파트 전세 만기가 1년 남았지만, 서둘러 다른 동으로 이사를 가고 싶었다. 부동산에 들러 상황을 설명하고 상담을 받았다. 생각보다 이사는 쉽지 않아 보였다.


그즈음의 나는 뭔가 환경에 문제가 있었다는 핑계를 대고 싶었던 것 같다. 아니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든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대로 무너질 것만 같았다.


'항암을 끝으로 아내는 완치 판정을 받을 수 있을까?'

'우린 힘들고 긴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을까?'


나는 프레임 속 인물들과 구성요소를 재구성하여 새로운 쇼트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영화와 달리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