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소암 4기 아내와 함께하는 남편의 기록
5화. 수술실 롱테이크.
1960년.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영화 <정사>가 칸 영화제에서 상영되었을 때 영화 속 롱테이크에 지친 객석에서 '컷!'을 외쳤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에게 롱테이크는 단순히 '길게 찍기'를 넘어,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를 시각화하는 철학적인 도구였다. 그는 관객이 영화 속 인물들의 공허함을 피부로 느끼게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시간을 지연시켰다.
2023년 9월. 아내가 수술을 받는 동안 나는 온몸으로 시간의 고독과 소외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유명한 감독이나 거창한 영화이론 따윈 필요 없었다. 나는 버티기 위해 본능적으로 '컷'을 외쳤지만, 현실의 시간은 냉정하게 계속 흘러만 갔다.
3차례의 항암을 마치고, 수술 일정이 잡혔다. 뭔가 항암보다 높은 벽을 만난 기분이었다.
아내와 나는 이 수술을 잘 이겨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3번의 항암 동안 아내와 나는 지쳐있었다. 수술을 마치고도 나머지 3번의 항암을 더 해야만 한다는 예고가 있었다.
솔직히 막막했다.
이 즈음 나는 희망과 절망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어지러웠다. 기나긴 치료의 시간을 버티려면 희망도 절망도 없어야 한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우리가 망설이고 주춤거릴 사이도 없이 병원은 자신의 스케줄을 계획대로 성실하게 진행했다. 대형병원이라 시스템이 갖추어지고 다양한 사람들에게 더블 체크를 받는 상황에 믿음이 갔다. 수술 직전 혹시 모를 이슈를 대비하여 대장과 의사를 만났다.
별생각 없이 진료실에 들어갔는데, 우리가 겪을 최악의 상황을 이상한 비유를 들어가며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아내는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나는 굳이 수술을 앞둔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를 왜 하는지 의사가 원망스러웠다.
긴 암투병의 나날을 보내며 다양한 의사 선생님들을 만나게 된다. 따뜻하지만 우유부단한 의사도 있고, 차갑지만 실력이 좋은 의사도 있다.
가장 난감한 상황은 아내의 희망 섞인 질문에 난색을 표하며 최악을 상정하는 의사를 만나는 경우다. 물론 현실을 자각시켜 주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섣부르게 희망을 주었다가 나중에 원망을 들을지 몰라 미리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부터 조금씩 아내의 질문이 줄었다.
나는 그들이 희망도 절망도 없이 덤덤하게 사실을 이야기해 주길 바랄 뿐이었다.
수술을 앞두고 아내는 아이들에게 영상 편지를 남겼다. 아내는 미소 지으며 아이들에게 수술을 잘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겠다 말했다. 그 순간 아내와 나는 수술 중 뭔가가 잘못될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수술 전날 아내는 내게 차분하게 말했다.
"나는 마취를 하면 수술이 끝날 때까지 시간이 훌쩍 흐르겠지만,
당신은 그 시간을 온전히 고통스럽게 견뎌야겠구나."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주체적으로 무엇을 선택할 수 없었다.
어찌할 수 없는 큰 물줄기에 휩쓸려 이곳저곳으로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수술 역시 그러했다.
아내는 시간을 맞추어 수술실로 향했고,
나는 남아 마냥 아내가 돌아오길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10시간이 넘는 수술시간 동안 아내는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웠고,
나는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웠다.
우리는 서로의 고통을 넘나들며 도움을 줄 수 없었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몫을 온전하게 견딜 수밖에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찾은 휴게실 창밖으로 이름을 알 수 없는 산이 보였다.
그 순간만큼은 산과 나무와 바위와 대화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그들에게 아내를 무사히 돌려보내달라고 간절하게 부탁했다.
그렇게 10시간이 흘러갔다.
결국 아내는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병실로 돌아왔다.
다행히 대장 관련 의사가 이야기했던 최악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수술과 회복까지 이어지는 병원생활동안 나는 아내의 화장실에 동행했다. 아내의 배를 가로지르는 철심이 박힌 긴 수술 자국을 자꾸 들여다보았다. 회복되는 인간의 몸을 옆에서 지켜보며 삶과 죽음, 고통과 기쁨 사이의 거리가 멀지 않음을 배우게 되었다.
나는 내 안에 요동치는 희망과 절망 사이의 거리를 좁혀보려 발버둥 쳤다.
시간은 미소를 지우고 감정 없이 무심하게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