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소암 4기 아내와 함께하는 남편의 기록
4화. 로케이션 헌팅. 병원에 사는 사람들.
차박에 로망에 있던 나는 조금씩 차박 용품을 모아 왔다. 차박은 1~2번 밖에 해보지 못했지만 이때 구입한 1인용 에어매트와 침낭을 아내의 입원 기간 동안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좁은 차에 누워 잠을 자는 것과 좁은 병실 보호자 침대에 누워 자는 것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며 불 꺼진 병실에서 혼자 천장을 바라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아내가 입원 항암을 하는 4인 병실에 생활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입원과 퇴원이 늘어난 지금은 덤덤하게 옆자리 사람들을 대하며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스쳐가듯 지내지만 첫 입원 즈음의 사람들은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 있다.
밤마다 몰래 부스럭 거리며 과자를 먹고 혈당이 높아져서 간호사에게 혼나던 당뇨 환자.
간호사들에게 유난히 시비를 걸고 짜증을 내던 노년의 남성 보호자는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매일 우울하게 보낼 줄 알았던 병실의 사람들에게도 그날그날의 희로애락이 고루 존재했다.
아내와 함께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보며, 웃고, 인상을 찌푸리며 병실 생활을 견디어 갔다.
난소암 항암의 경우 모든 병원이 같은 방식으로 같은 항암제를 쓰는 것 같았다. 수술은 병원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항암의 경우 모든 병원이 똑같다는 결론을 내리고 아내의 암을 발견한 병원에서 수술 전 항암을 시작했다.
아내는 어깨와 가슴뼈 사이에 시술한 케모포트를 통해 2가지 종류의 항암제를 4시간 동안 맞았다. 항암을 맞고 입원하여 며칠간 경과를 지켜보았다. 4일부터 7일까지 특히 힘들어하다가 퇴원할 즈음이 되면 컨디션이 조금씩 올라왔다. 독한 항암제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염려했지만 병원에 입원한 상태라 바로바로 대응을 할 수 있어 조금 안심이 되었다.
어떤 의사가 항암제는 몸에 집어넣는 '독'이라고 했다. 아내를 살리려 몸에 독을 집어넣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아내는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어했다. 육체적 고통은 서로에게 직접적으로 전달되지 않는지라 나는 아내의 아득한 절망을 안타깝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입원한 동안 수술할 병원의 리스트를 뽑았다. 집에서 그렇게 멀지 않고, 난소암 수술 후기가 많은 곳으로 몇 군데 추렸다. 항암과 항암 사이 컨디션이 좋지 않을 와이프를 염려하여 후보군을 3군데로 제한하고, 그중에서 최종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아내의 경우 이미 암을 진단받았기 때문에 진료 예약을 잡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2번째 항암 즈음하여 아내의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다. 집에서 머리를 말려주는데 머리가 한 움큼씩 빠지는 게 느껴졌다. 엄마가 머리가 빠지면 아이들이 놀랄 것 같아서 아빠인 내가 먼저 집에 있는 아들이 사용하는 이발기로 머리를 빡빡 밀었다.
아내가 감동할 줄 알았는데, 도리어 괜한 짓을 했다고 화를 냈다. 영화와 현실은 이렇게 달랐다.
얼마 후 아내의 머리도 내가 직접 밀어주었다. 아내의 눈가에 눈물이 살짝 비추었지만 자신의 두상이 생각보다 예쁘다며 애써 만족했다. 이발을 마치고 빡빡이 부부의 사진을 한 장 남겨 두었다. 사진 속에 묘하게 웃음과 눈물이 교차했다.
아이들에게 엄마의 상황을 설명할 방법을 고민했다. 아이들도 본능적으로 엄마가 어딘가 많이 아프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아내와 내가 병원에 있는 동안 장인어른, 장모님, 처제네까지 아이들을 번갈아가며 봐주었다.
아이들이 상처받고 어두워질까 봐 모두들 조마조마했다.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아이들에게 전해지는 어두운 감정이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 기운까지 막을 순 없었다.
3군데의 병원을 둘러보고 아내의 의견을 반영하여 최종 병원을 선택했다. 아내는 내심 결정을 내리기 부담스러워했다. 내가 아내의 입장이었어도 그러했을 것이다.
이때 몇 권 읽은 암 관련 책에서 암치료에 있어서 환자의 주체성을 가져야 치료가 잘 된다는 문장이 기억이 남았다. 나는 조금 냉정하게 아내에게 최종 결정은 당신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내는 처음엔 서운해했지만 이내 몇 가지 자신만의 근거를 들어 생각보다 빨리 수술 병원을 선택했다.
"그 선생님 손이 수술을 잘하게 보였어."
모든 선택은 돌아보면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벽한 정답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도 이때의 아내의 선택이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을 암환자 당사자 그리고 주변사람들 모두 자신의 선택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믿고 치료를 진행했으면 좋겠다.
난소암의 경우 CA-125라는 수치로 암의 진행을 판단한다. 피검사에서 나오는 해당 수치가 정상 범위를 넘어가면 암이 존재한다고 1차적인 결론을 내리고 CT, PET-CT 등으로 정밀하게 판독을 이어간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아내와 나는 매번 시험 결과를 기다리는 수험생 마냥 CA-125 수치에 울고 웃는 나날을 이어가고 있다.
3번의 항암이 진행되면서 아내의 CA-125 수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덕분에 우리는 수술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는 수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하지만 수술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