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이라는 롱테이크

난소암 4기 아내와 함께하는 남편의 기록

by 킵고잉

3화. 캐스팅,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한 학기 남은 대학원 일정을 조율하기 위해 지도교수님께 아내의 상황을 설명했다. 가족 중에 비슷한 일을 겪었던 교수님은 위로와 함께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셨다. 그중에서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은 암 치료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라는 조언이었다.


다양한 선택지들이 있었지만 마냥 고민만 하기엔 암의 진행 속도가 빨랐다. 우리는 무언가를 자꾸 결정해야 했다. 선택은 어려웠지만,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아내의 소식을 들은 주변 가족과 지인들의 조언이 이어졌다.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하는지, 어떤 의사를 만나야 하는지 옵션에 옵션이 늘어났다. 짧은 시간 안에 최선의 선택을 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이 몰려왔다.


유명한 병원의 소위 명의라고 불리는 의사를 찾아야 했다. 유명 병원일수록 예약 잡기가 힘들었고, 유명 의사일수록 대기가 길다고 했다. 검색을 해나갈수록 유명하다는 그 판단기준이 모호하게 느껴졌다.


이즈음 주변에 암에 걸린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친한 친구는 몇 년에 걸친 아버지의 수술과 항암 경험을 공유해 주면서 지금의 상황을 덤덤하게 헤쳐나갈 힘을 주었다.


비슷한 시기 아내가 암에 걸린 친구 역시 자신이 겪은 일련의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면서 감정적으로 서로 의지할 수 있게 도움을 주었다.


"가족 중에 의사가 있어야 한다."


어른들이 자주 하는 말이 떠올랐다.


아내와 나의 가족 중엔 의사가 없었다. 대학 동기 중에 학교를 관두고 재 입학하여 의사가 된 형이 있어서 민망함을 무릅쓰고 거의 20년 만에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연락이 되었고 형은 되도록이면 수술 경험이 많은 큰 병원에 가는 걸 추천해 주었다. 요즘은 아는 의사가 있다고 해서 진료나 수술의 순서를 바꿀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조언도 함께 해주었다.


우습게도 그 말이 위로가 되었다.




암을 발견한 병원 담당 의사의 판단과 행동이 빨랐다. 그는 쿨-하게 원하는 병원이 있으면 가라고 했다. 하지만 그 병원에 가기 위해 시간이 오래 걸린다면 여기서 빨리 항암을 시작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거기에 항암치료에 필요한 기본적인 조치인 케모포트 시술을 빠르게 진행시켜 주었다. 돌이켜보면 이때 선생님을 만난 것이 우리에겐 크나큰 행운이었다. 그는 심리적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암 판정을 내리던 날. 아내에게 의사 선생님이 덤덤하게 말했다.


"그동안 열심히 안 사신 거 아니잖아요?"

"본인을 탓하지 마세요."

"굳이 원인을 찾으려고 하지 마세요."

"단지 운이 없었을 뿐이에요."


아내는 담배를 피우지도, 과음을 하지도 않았다. 일탈을 하지 않고 차분한 삶을 살아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열심히 공부해 공무원이 되었고, 아이 둘을 낳고 고민 끝에 공무원을 그만두었다.


암을 진단받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가운데 아내가 이런 말을 했다.


"암에 걸린 상사를 보고, 암에 걸리지 않기 위해 공무원을 그만두었는데.."

"나도 암에 걸렸네.."


나는 아내의 말에 어떤 위로나 조언도 덧붙일 수 없었다.

아내의 유일한 일탈이라면 영화를 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는 것이 전부였다.


인간은 자꾸 원인을 찾는다. 나 역시도 왜 아내가 암에 걸렸는지 원인을 찾으려 노력했다. 어쩌면 그건 현재의 결과를 탓할 과거의 희생양을 찾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하지만 단순히 운이 없다고 결론짓기엔 그 이후에 감당할 현실이 너무 버거웠다.




아내는 난소암 4기라 바로 수술을 진행하기 어려웠다. 여러 의사가 모여 다학제를 진행 한 끝에 3회 항암을 먼저 진행해 암을 줄이고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아내와 나는 짧은 고민 끝에 현 병원에서 3회 항암을 먼저 진행하고, 그 사이 수술할 병원을 알아보는 것으로 결정했다. 담당 의사 선생님도 우리의 결정을 존중해 주었다.




나의 상황을 알게 된 주변 지인들이 위로와 함께 돈을 보내주었다. 아내의 보험에서 나온 암진단 비용과 주변 사람들이 보내준 돈 덕분에 하던 일들을 중단하고 아내의 치료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돈에 집착하지 않고 살았지만, 아내의 암 진단 이후 돈의 소중함을 인정하게 되었다.


아내의 소식을 듣고도 어떠한 위로나 연락조차 없는 지인들도 있었다. 불행은 차가운 현실이었다. 나 역시도 차가워져야 이 순간을 견딜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이상한 다짐을 하게 되었다.




본격적인 항암이 시작되었다.


나는 짐을 챙겨 아내가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엔 암환자가 참 많았다.


아내의 힘든 항암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만 운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비겁하게도 위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