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이라는 롱테이크

난소암 4기 아내와 함께하는 남편의 기록

by 킵고잉

2화. 프리 프로덕션이 시작되다.


아내에게 '자신이 암일지도 모른다'는 전화를 받은 날 저녁. 일단 진행 중인 일들을 먼저 멈추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머릿속에만 있고, 잘 실천하지 못했던 문장을 되뇌어 보았다.


'가장 소중한 일을 먼저 하자.'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은 '아내'였다.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그 과정에서 민망하게 눈물이 흘러나왔고, 울음을 삼키며 겨우겨우 변명과 부탁을 이어갔다.


다행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의 상황을 걱정해 주고 위로해 주었다. 몇몇 사람은 그 와중에 나 때문에 자신의 일이 혹여 방해를 받지 않을까 먼저 걱정했다. 아내가 암 진단을 받은 이후 인간관계가 단순하게 정리되었다.




여기저기 통화를 마치고, 한참을 차 안에서 울고 나니, 아이들 생각이 났다. 10살, 8살 한참 엄마가 필요한 나이었다. 겨우 눈물이 잦아졌나 싶었는데 아이들 생각이 떠오르니 나오면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집에 계시던 장인어른 장모님께 아내의 상황을 설명했다. 일단 내일 병원에 가서 결과를 들어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아이들 걱정을 하듯, 장인어른 장모님도 자신의 딸을 걱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그 슬픔이 너무 아득하게 느껴져서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밤새 아내의 병이 별 거 아닐 거라고, 의사가 잘못 판단했을 거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다음날.

의사 선생님은 아내의 몸을 촬영한 PET-CT를 보여주며 아내가 난소암 4기라는 진단을 내려주었다.


이후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난소암은 초기에 발견하기 어려워 대부분 3기-4기에 발견이 된다고 한다. 아내 역시 그러했다. 난소암이 진행되어 폐에 물이 차기까지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우리의 상상력은 기껏해야 '결핵' 정도였다.


암에 관해서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몰랐다. 의사가 4기라는 말을 했을 때..


'제일 약한 암이 4기이고 3기, 2기, 1기 순으로 진행되는 거구나..' 하고 혼자 생각했다.


의사의 설명을 들으며 4기가 암의 마지막 기수임을 알아차린 나는 그 자리에서 어떻게든 희망을 잡고 싶어 의사에게 물었다.


"4기여도 완치되는 경우가 있죠?"


의사는 그런 경우도 있다는 대답을 해주었다. 그날 이후 힘들 때마다 그 대답을 부적처럼 꼭 쥐고 버텼다.




결핵인 줄 알고 격리병동에 있었던 아내는 암판정으로 일반병실로 옮기게 되었다. 짐을 챙겨 다시 오겠다는 내게 아내는 집에 가기 전에 먼저 자신의 머리를 감겨달라는 부탁을 했다.


"머리가 너무 가려워."


아내는 몸에 뭔가를 주렁주렁 달고 있어서, 얼마 동안 머리를 감지 못했다. 자신에게 닥친 거대한 어려움에 집착하기보다 머리가 가려운 사소한 일을 신경 쓰는 아내가 고마웠다.


장모님은 엄마가 옆에 있는데 엄마가 아닌 남편에게 부탁하는 딸을 어이없게 바라보았다.




아내의 머리를 감겨주고 장모님과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의 공기는 무거웠다. 차가운 현실 인식이 한 템포 늦게 우리의 의식을 휘어잡고 괴롭혔다.


중간 신호대기 중에 나는 참지 못하고 운전대를 잡고 펑펑 울었다. 장모님이 말없이 내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겨우겨우 운전을 해 집으로 돌아오니 앞이 캄캄했다. 시야가 흐려지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온갖 안 좋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뒤덮었다. 앞이 캄캄해진다는 게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사실적인 표현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깨닫게 되었다.




상황이 너무 어렵고 복잡하여 아무 판단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선택을 해야 했다.


병원을 옮겨야 할지, 수술을 진행해야 할지, 병원비는 어떻게 감당할지, 아이들 케어는 어떻게 해야 할지..


그리고 그 선택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