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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 끝에 만난 크림빵

by ligdow



어린 시절 육상부 관련된 ‘강렬한 처음’의 기억은 몇 가지 더 있다.

-옆드려 뻗쳐 후 삽자루로 엉덩이를 맞은 일

-아침 운동 후 간식으로 날달걀을 먹었던 일

-오후 운동 후 간식으로 삼립 크림빵과 요구르트를 먹었던 일


일주일에 두세 번은 전력질주로 학교 옆 비탈진 밭을 지나 뒷산을 뛰는 것이 아침 운동의 시작이었다. 전교생 100여 명 중 매해 육상부는 12-14명, 그중 여학생은 5명 남짓, 체격도 나이도 여학생에게 불리한 조건이었으니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삽자루는 늘 나와 친구의 몫. 누가 봐도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는데 혼난 건 늘 느린 쪽이었다. 너무 부당했다.


4학년 때 읍내에서 전근 온 젊은 남자 선생님의 말씀은 곧 법이었다. 억울해도 하소연은 통하지 않았다.

그 선생님께 공정이란 단어는 너무 낯선 말이었던 모양이다.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산을 뛰어 내려오자마자 운동장 한쪽에서 엎드려뻗쳐를 하고 삽자루로 엉덩이를 맞아야했으니. 그것을 감내해야 했던 시간들이 지금 생각해도 먹먹하고 씁쓸하다.


엉덩이는 쑤시고 마음은 창피한 채로 제자리에 가서 운동을 계속해야 했다. 끝나면 소각장 옆 커다란 벚나무 아래에서 선생님이 나눠주는 날달걀을 하나씩 받아 들었다. 달걀 끝을 손톱으로 살짝 뜯고, 후루룩 한 입에 꿀걱~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비릿한 맛이 입안에 가득했다. 수업종이 울리기 전에 입안에 남은 찝찝함을 머금고 후다닥 교실로 뛰어들어가 1교시 수업을 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시골의 작은 학교 육상부에서 먹은 간식은 마치 소중한 보물처럼 느껴졌다.

오후 운동 후에는 크림빵과 요쿠르트로 달콤한 마무리를 했다. 처음엔 그 달달함이 신기하고 좋았지만, 자주 먹다 보니 어느 순간 하얀 크림에서 화장품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나중에는 절반만 먹고 선생님 몰래 버리기도 했다.


오늘 마트에서 그 빵을 다시 만났다. 눈에 익은 붉은 글씨와 투박한 포장이 그대로였다. 그때 운동 후 숨을 헐떡이며 이 빵을 먹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얀 크림의 달콤함과 피곤한 몸에 잠시 힘이 돌았던 순간도 함께.


지금도 나는 달걀은 완전히 익힌 것만 먹고, 크림빵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오늘 크림빵 한 봉을 사온 건 먹으려는 게 아니었다. 그저 그때의 추억을 손에 쥐어보려는 마음에서였다.




어쩌면 내 깡다구는 그때부터 시작된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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