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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찾아오는 또 다른 가족

소소한 기쁨을 선물하다.

by ligdow


시부모님 댁 처마 밑에는 매년 반가운 손님이 찾아온다. 봄이면 짝을 지어 와 집을 짓고, 새끼를 낳아 두 계절 동안 분주히 보낸다. 올해도 암수 한 쌍이 세 마리 새끼를 무사히 키웠다.


가끔 시부모님과 통화할 때면 제비 가족 안부를 꼭 묻고, 어머님께서는 그들의 근황을 세세히 전해 주신다. 나도 시골에 갈 때마다 가장 먼저 처마 밑을 확인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7월 15일, 일이 있어 남편과 함께 시댁에 들렀다.

제비 부부는 집을 비웠고 새끼 세 마리는 둥지 옆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한 시간쯤 지나서 세 마리는 현관 앞 반투명 빗물받이 챙 안쪽에서 머리를 맞대고 다정하게 서로를 의지하고 있었다.


“세상에, 자기야, 얘네들 어쩜 이렇게 사랑스럽게 모여 있지? 우애가 참 좋구나. 귀요미들아, 여기 좀 봐봐.”


“아까 저 자리는 탁 트여서 천적에게 쉽게 들킬 수 있었지. 지금 여긴 밖에서 전혀 보이지 않으니까 훨씬 안전해.”


내 눈에는 그저 따스하고 한가롭게 쉬는 모습 같았는데, 남편 말처럼 그 작은 생명들은 치열하게 자신을 지키는 시간 속에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시부모님은 해마다 제비가 떠난 뒤 빈 둥지를 치우고 처마 밑을 깨끗하게 닦아 두셨다. 그런데 올해는 작년 둥지를 그냥 두었더니, 봄에 돌아온 제비가 그 집을 조금 고쳐 다시 쓰더란다. 매번 새 집을 짓던 제비들이 이렇게 재사용하는 건 처음이라 어른들도 신기해하셨다.


두 분은 실외기 바람이 제비들에게 혹시라도 피해가 될까 봐 에어컨을 틀기가 망설여지셨단다. 제비집과는 꽤 거리가 있는데도 말이다.


우리는 바쁘다는 이유로 자주 찾아뵙지 못하지만, 제비는 시부모님 댁을 찾아와 그분들의 일상에 작은 기쁨과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래서 참 고맙기도 하고, 그만큼 어른들께 죄송한 마음도 든다.


매년 찾아오는 제비를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작은 생명을 바라보며 웃음을 짓는 두 분의 모습은 참 따뜻하다. 자연과 함께 숨 쉬며 살아가는 시부모님의 깊고 온화한 사랑이 고스란히 전해져 가슴이 뭉클했다.


어제 시어머니와 통화를 하다 제비 소식을 물었다.

“어멈아, 걔네들 나흘 전에 떠나고 없어.”

아침에 나가 보니 조용했고 하루 종일 제비 가족을 볼 수 없었다고 하셨다. 다음 날 청소하느라 현관문을 열어뒀는데 한 마리가 들어와 파닥이며 지저겼다고.


“다른 식구들은 어디 두고 혼자 왔니? 같이 가야지. 가족 잃어버리지 말고 얼른 가라.”

시어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시자 제비는 몇 번 지저귀고 훌쩍 날아갔고, 그 뒤로는 한 마리도 돌아오지 않았다고...


요즘 제비는 옛날처럼 박씨를 물어 오진 않지만, 생명을 잉태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으로 우리 가족에게 소소한 기쁨을 선물해 주었다.

제비는 떠났지만 다섯 식구가 남기고 간 온기와 반가운 지저귐, 그리고 행복한 날갯짓은 아직도 시골집 처마 아래 고스란히 머물러 있다.



-2024년 6월 15일


-2025년 6월 29일

작년 집을 보강하고 새끼를 낳았다.

자세히 보면 한 마리가 입을 벌리고 있다.


-7월 15일

앗싸, 좁은 집에서 탈출!


-7월 15일

우리가 방심했어. 여기가 안전해!

엄마 아빠는 언제 오시려나... 배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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