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대를 함께 해준 모든 분들께 감사하며
주말에 집에 내려갔을 때였다.
마당에서 엄마와 동네 할머니와의 대화가 들려왔다.
"우리 막내는 서울중앙병원(현 서울아산병원) 물리치료실에서 일해."
“아주 잘됐네. 우리나라에서 그 병원 모르는 사람 없을 거야. “
엄마는 내가 교대나 사범대에 가지 않은 것,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하는 것을 못마땅해하셨다. 하지만 이렇게까지인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엄마, 그건 거짓말이잖아. 내가 복지관 다닌 지 벌써 5년이나 됐는데 엄마는 뭐가 그렇게 싫어?“
“큰 병원도 많은데 굳이 장애인복지관에 다니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그리고 여기 사람들은 복지관이 뭐 하는 곳인지도 몰라. 일은 힘든데 돈은 못 벌고 너는 헛똑똑이야."
막내에 대한 기대가 컸던 엄마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러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굳이 서운해할 이유도 없었다. “네네네~ 박 여사님.” 나는 매번 그저 웃어넘겼다.
나의 20대는 소아물리치료사가 되고자 했던 강렬한 선택으로 시작해 평생 함께할 가장 좋은 친구이자 배우자를 만나며 행복하게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그 10년의 시간을 대표하는 이야기들을 '나답게 빛나던 20대' 브런치북에 담았다. 대체로 즐거웠고 보람 있고 만족스러운 날들이었다.
2000년 1월, 2주 동안 일본 장애인시설에 연수를 다녀온 적이 있다. 일본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중에 타 부서 팀장님께서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부잣집 외동딸 아니면 막내딸이죠?"
“네? 제가요? 왜 그렇게 생각하셨어요?"
“항상 보면 행복해 보여서요."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살아가며 그 안에서 만족을 느끼고 하루하루를 채워가던 내 삶이 누군가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나 보다.
장애인복지관에서의 소아물리치료는 타인과 경쟁하거나 실적을 내야 하는 일이 아니었다. 일반적인 성공의 기준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도 거의 없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오직 어제의 나보다 더 나아지기 위한 노력뿐이었다. 치료의 질을 높이기 위해 꾸준히 공부하는 것은 당연했고 그 과정 또한 즐거웠다.
무엇보다 팀장님을 비롯한 재활치료팀 동료들이 전문성과 따뜻함을 갖춘 사람들이라 편안한 마음으로 일할 수 있었다.
하루 24시간이 늘 아쉬웠다. 의미 있는 무언가를 더할 수 있게 40시간이면 좋겠다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스무 살에 세 개의 목표를 세우고 하나씩 이루어가며 느낀 성취감과 행복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대학원 진학을 내려놓고 현재의 일상에 집중하고자 했던 것 또한 나다운 선택이었고 그만큼 만족스러웠다.
어찌하다 보니 자원봉사와 관련된 이런저런 행적들이 직장에 알려져 윗분들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었다.
대단한 일도 아니었고 의도한 적도 없는데 무척 난감했다. 그러던 중에 2000년 12월 종무식을 며칠 앞두고 관장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직원들이나 이용자들 사이에서 선생님을 칭찬하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내가 기분이 참 좋더라고요. 여러모로 고맙고 칭찬해주고 싶어서 표창패를 주려고 해요. 우리 복지관 개관이래(1975년 개관) 처음 만든 상이라 의미가 큽니다."
서울살이 10년 동안 다섯 번 이사를 했다. 둘째 오빠네 집에서 지냈던 시기를 빼고 네 번의 자취방 모두 도둑이 들었다. 동굴 같던 지하에서 반지하, 1층에서 2층까지. 그럼에도 없어진 물건은 단 하나, 천호동 반지하에 살 때 영어 공부하려고 샀던 파나소닉 CD플레이어 그것뿐이었다. 구입한 지 이틀밖에 되지 않은 데다 24만 원이나 하는 꽤나 비싼 물건이었다. 그날은 경희대에서 신경계 교육을 듣는 날이라 책상 위에 두고 갔는데 결국 새것 그대로 도둑에게 기증한 셈이 되었다.
네 번째 자취방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 집은 또 다른 의미로는 내게 행운을 남긴 공간이었다.
결혼을 앞둔 친구가 살던 집에 내가 이사 들어갔고, 그 친구의 결혼식에서 그를 만났다. 그리고 1년 뒤 우리는 연인이 되었고 결혼을 했다. 지나고 보니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이어진 하나의 흐름처럼 느껴진다.
너는 내 운명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게 아닐까.
내가 선택한 것들에 집중하며 살아온 20대였다.
그 시간들을 뒤적일 때마다 오래 전의 설렘과 빛나던 순간들이 되살아났다.
그런데 그것들보다 더 따뜻하게 남은 것은 지난 넉 달 동안 내 글을 읽어준 분들의 존재다.
많은 분들이 소중한 시간을 내어 읽고, 기다려주고, 마음을 보태준 것은 정말 특별하고도 소중하다. 그 따뜻함이 내게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 모른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깊고 진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동안 ‘나답게 빛나던 20대’와 함께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메인 사진 제공: Jin 작가님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는 ‘나답게 빛나던 20대-부록’을 발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