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일을 맛있게 먹으려면

by ligdow


버트런드 러셀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책에서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의 탐구, 그리고 인간의 고통에 대한 연민이라는 세 가지 열정이 자신의 생애를 지배해 왔다고 했다.


문득 그 문장을 떠올리며 지금의 나를 생각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살고 있을까. 시간이 더 흐른 뒤에 지금을 떠올렸을 때 어떤 문장으로 나를 설명하게 될까. 어쩌면 이렇게 말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건강을 위해, 먹기 위해 살았다고.

웃자고 하는 말이지만 가끔은 그 말이 진짜처럼 느껴진다.





음식은, 암 이전에도 외식과 배달음식을 즐기지 않았고 대부분 내가 만들어 먹었다. 늘 그렇듯 자연드림에서 장을 보고 난각번호 1번이나 2번 달걀을 먹었다.

다만 지금은 먹거리 하나하나에 조금 더 신경을 쓰고 골고루 더 잘 챙겨 먹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십자화과 채소들과 친해졌다. 예전에는 쌈 채소라면 상추와 깻잎 정도였는데 요즘은 케일이 식탁에 자주 오른다.


십자화과 채소인 케일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브로콜리와 양배추처럼 설포라판(항암과 항산화 성분)이다.

그 외에도 베타카로틴, 비타민K, 비타민 C, 칼슘과 마그네슘, 칼륨 같은 미네랄과 루테인, 제아잔틴 같은 성분도 풍부하다. 그래서 잎채소의 끝판왕이라는 별칭이 붙었다고 한다.



나는 이렇게 손질한다.

-무농약 혹은 유기농 쌈케일을 사 온다.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는다.

-절반은 찌고 나머지 절반은 가늘게 채 썬다.

-김이 오른 찜기에 뚜껑을 열어 둔 채 2-4장씩 겹쳐 올린다.

-케일은 뻣뻣하고 질긴 채소라 그냥 쌈으로 먹기에는 부담스럽다. 그래서 앞뒤로 대략 10초씩, 말 그대로 스치듯 찌면 다양한 음식과 함께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다.

-채 썬 케일은 양배추나 브로콜리처럼 60분-90분 동안 그대로 둔다. 잘린 면이 공기와 닿으며 설포라판이 더 많이 생성될 시간을 주기 위해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싱그러운 초록색이다.

수증기를 먹고 한결 부드러워졌다.

고집을 내려놓으면 부드러워지는 나처럼.



이렇게 먹는다.

-생케일을 채 썰어 상온에 두었다가 찐 케일과 함께 먹는다. 나머지는 유리 용기에 담아 냉장고에 보관한다.

-다진 채소를 살짝 볶고 고추장과 된장, 두부를 으깨 넣어 쌈장을 만든다.



-들기름과 참깨를 넣은 주먹밥을 케일로 말아준다.

-다진 채소와 소고기 다진 것을 각각 고추장과 간장으로 조리해서 쌈장처럼 곁들여 먹어도 좋다.

-낫또와 반찬을 케일에 싸서 먹으면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어제는 흑가리비를 찐 것과 닭고기를 채 썬 케일과 함께 쌈으로 먹었다. (feat 열흘 전에 담근 고추장)



-케일쌈밥에 배추겉절이와 섞박지, 채소와 두부를 넣은 쌈장으로 그녀들에게 한 끼를 대접한다.

맨밥이든, 볶음밥이든, 멸치주먹밥이든… 케일 옷을 입으면 어디에나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찐 케일은 대충 말아도 모양이 잘 나와 기분까지 좋아지게 하는 매력이 있다.



그를 위한 도시락으로도 괜찮다.






케일 한 장에도 이렇게 신경을 쓰고 즐기다 보면, 작은 선택 하나하나가 나를 조금 더 부드럽고 건강하게 만드는 것 같다.

오늘의 즐거운 소꿉장난은 여기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