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봄 어느 날
엄마가 소화가 안 된다고 하면서 황달기운이 있는 듯 하다고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의사인 셋째 여동생네가 병원으로 모시고 가더니
저녁에 퇴근하고 병원으로 모이라고 한다.
동생을 만나니
표정이 안 좋다..
가슴이 싸한 느낌
엄마가 췌장암 초기 라고 하신다.
동생들은 당장 감정을 표현하고 우는데
나는 이상하게 가슴이 답답하기만 할뿐 눈물도 나지 않는다.
4남매중 맏딸인 나, 와 동생 셋은 이렇게나 다르다.
감정의 표현이나 반응의 강도, 관심있는 사항 등
그리고 나는 집안에서 어떤 상황이 생기면 중재자 역할,
내가 무엇인가 잘 해야 한다 라는 고정관념이 있다.
그 날도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내 감정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지 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그저 그 상황에 대한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면 되는데
표지 사진은 암 수술 후
"나는 어디 여행다녀와도 서울 불빛만 보면 좋다." 라고 늘 말씀하셨던 엄마가
"어디 나무 밑에 가서 있고 싶다." 라고 하셔서
보성에 있는 대원사에 일주일동안
함께 있었던 떄의 사진이다.
늘 강하고 자기 관리를 잘 하시는
절체와 희생을 마다 하지 않으시는
강한 우리 엄마.
췌장암 초기 판정을 받은 2020년
7시간이 넘는 수술을 받으신 후
"섬망"을 걱정하는 우리 4남매를
눈을 뜨자 마자 한 사람씩 둘러보셨다.
그리고 나를 보며 '이쁘다'... 라고 한 엄마
그럼 동생들은 '엄마는 언니만 예뻐해..' 라고 하겠지
늘 그렇듯이
그런 엄마가 2021년 11월에 돌아가셨다.
그 이후
1년 반 동안의 투병 생활을 하시다가
2021년 11월에 돌아가신 엄마.
그 엄마의 4남매 중 맏딸, 내 동생들과 5살, 7살, 11살 차이 나는
명실상부한 맏딸, 맏이로 커 온 나
그리고 엄마
나는 맏딸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고 있는 중이다.
내가 심리학 공부를 다시 전공하고, 명리학을 공부해 온 것도
사람에 대한 관심을 궁금증을 넘어 마음 깊이 아픈 그 무엇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그것이 맏딸 콤플렉스,
한때, 아니 오래도록 ‘최선’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
4남매의 맏이로서 무엇이든 잘해야 한다는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던 나,
그런 나를 키워주신 엄마, 엄마와 나 사이에
최선은 무엇이고 차선은 또 무엇일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던 때, 내 세상은 전복되었다.
나만 잘 하면 된다는 고정된 신념 속에서
맏딸 콤플렉스는 모든 사람들에게 착한 사람이어야 한다고까지 속삭였다.
그 고정된 신념이 깨질 때,
그간 나는 무엇을 붙들고 나 아닌 나로 살았는지 통렬한 각성이 일어났다.
‘나’로 살고 싶어서 극심한 몸살을 앓았다.
엄마는 무엇이든 계획하고 자신의 의도대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을 원하셨다.
자연스레 본인의 희생도 마다하지 않으셨다.
4남매 중 맏딸이었던 나는 엄마와는 반대 성격유형이었다.
사랑하는 엄마지만
그렇게 부딪히기도 하고
엄마의 성격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이 사실 하나를 알기 위해 심리학, 명리학, MBTI 공부해 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보웬이 말하는 연합성이 무척 높은 엄마와 딸 관계였으니
애착 관계에서 오는 내면의 불협화음은 불 보듯 뻔하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모녀 관계로 비치지만,
그 안에는 서로에 대한 의존성이 꽤 높은 관계였다.
엄마는 자신의 꿈을 맏딸에게서 실현하고 싶었고,
좋은 사람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던 맏딸의 조합은
외형상으로는 그럴싸한 파트너였다.
순둥이 맏딸은 자신에 대한 처절한 고민 없이
엄마가 잘 설계한 정해진 길로 온실 속의 화초 역할을 잘 수행했다.
엄마의 든든한 힘을 믿는 여자어른아이로 성장했다.
그러나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고, 맏딸은 더 이상 마리오네트 인형이길 거부했다.
그 여자어른아이는 드디어 스스로 주인이 되어 자신의 삶을 탐구하고 싶어졌다.
‘내가 왜 이럴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문제를 마주하고 해결하고 싶어졌다.
늦깎이로 심리학 공부를 시작하고, 교육학과 연계하여 셀프 교육에 들어갔다.
내 문제로 시작한 사유가 타인에게까지 넘어가서 강의와 코칭으로 말하게 되었다.
관련 책을 쓰고, ‘책쓰기’를 코칭하게 되었다.
‘맏딸 콤플렉스’를 읽고, 말하고, 쓰게 되었다.
이 글에 맏딸 콤플렉스를 가졌던 한 명의 ‘여자어른아이’가
‘여자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담고 싶었다.
학부모 관련 교육과 강의를 통해 만난 숱한 맏딸들의 소리없는 함성을 듣고서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서 아이 문제를 해결하러 온 엄마들도
결국 엄마 자신이나 부부 사이의 문제가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보자고 말씀드린다.
자신을 돌보고 마주해 보라는 이야기이다.
‘나처럼 그들도’, ‘그들도 나처럼’
한 인간으로서의 자기 인식을 제대로 할 수 있을 때
참행복에 이른다는 각성이 나를 더 성장하게 했다.
가족 간, 건강한 관계의 거리와 분리가 필요하다는 맥락을 더불어 말하고 싶다.
신년맞이 한라산 등반이 내 삶을 주체적으로 설계하고 펼쳐가겠다는 의지를 담은 통과의례가 되었다.
나는 이 책이 나처럼 맏딸 콤플렉스에 시달리며
참된 자기를 만나지 못하고 있는 세상의 학부모들에게 전해지기 바란다.
‘학’을 뗀 ‘부모’로서, 아니 자연인 ‘000’로서 참자기를 발견하고,
자신 삶의 주인공으로 자신의 삶을 콘텐츠로 만들어 써가는 저자로 살기.
그 무한한 자유 앞에 존재의 춤을 추게 되는 여정에서
이 책이 통과의례의 일지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무상(無常)으로 나의 인생이 펼쳐졌고
그 길을 좌충우돌하며 한 걸음씩 걸어왔다.
나는 유일한 존재임을 인식하지 못한 탓에
돌부리에 걸려도 무감하게 떠밀려서 자조적 의미의 무상을 떠올리던 것이 전반 인생이었다.
이제는 ‘무상(無常) :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를 고정적이지 않고,
언제나 가변성이 있다로 해석한다.
내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무한한 가능성 안에서 끊임없이 시도하고 성장하며
그 존재 자체로 선한 영향력의 울림을 줄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설레는 일인가?
나의 이야기가 인연이 닿는 분들에게 울림이 되었으면 한다.
우리는 파도 아래 흐르는 거대한 물결로 연결되어 있으니
서로의 거울이 되어 공명을 일으키고 있고더 큰 파장으로 ing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