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은 1년동안
인연이 닿는 선생님이
급하게 공석으로 된
고등학교에서 진로교사로 근무까지 했다.
기존 한국심리적성협회와 나작가 책쓰기교육원을 운영하면서
학교근무까지 하려니 몸과 마음에 바쁘다를 달고 살았지만
학교 현장의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이 더 한층 가까이 다가오는 희노애락으로 다이나믹한 한 해였다.
2023년 9월 1일, 가을 바람이 살랑 살랑 분다. '살랑 살랑' 이란 말은 과하지 않으면서도
신선하면서 기분좋게 만드는 느낌을 적절하게 표현해 주는 듯 하다. 예전에는 너무나 당연하고
식상하다고 생각까지 하면서 지나온 것들이 새록 새록 다가오기도 한다.
사람들이 오랫동안 자주, 많이 하는 말에는 이유가 나름 있는 듯 하다.
학교 아이들도 계절의 변화를 느끼나 보다.
게다가 2학기 시작이니 나름 눈빛이 빛나는 녀석들도 있고 아직 마음의 열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도 있다.
살랑 살랑 바람이 불던 그 날, 학급에 자습 지도를 하러 들어갔다.
유난히 친한 고등학교 1학년 정민이와 형진이,
뭘 하나라도 펴 놓고 공부 폼새를 잡고 있는 정민이와 그저 엎드려 있는 형진이 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는
형진이에게하는 말
그 말에 빵 터진 나는
"정민아,
너 그 말을 정말 그렇다고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거니?"
"네, 그런 말을 예전에 들었고 제가 직접 해 보니까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정말 맞는 이야기이다. 내가 2018년 이너북스에서 출간한
학교 정규 수업에 집중하면 80점에서 잘 하면 90점까지는 가능할 수 있다.
물론 100점을 맞게 가르쳐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한다면
그 또한 맞는 이야기이지만 공부란 가르치는 쪽과 배우는 쪽이 상호작용을 해야 하고
배우는 쪽이 "날개짓을 100 번 넘게 반복하는, 자기 것으로 만드는 반복" 이 필요하기 때문에
누구나 100점 받을 수 있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난 여기에서 정민이의 따뜻한 마음을 느꼈다.
친구를 진심 걱정하는 마음과 그것을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마음이 전해진다.
그래서 난 형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형진아, 샘은 늘 여기에 있으니까
너의 자발적인 의지로 사인을 보내. 그러면 내가 할 수 있는 한 도움을 줄께"
그렇게 말하고 교탁쪽에 와서 앉아 있었더니
10분도 안 되어서 형진이가 슬금 슬금 앞으로 와서 교탁옆 의자에 모른척하고 시크하게 앉는다.
어찌나 귀엽고 반가왔던지, 하지만 그 마음을 살짝 접어두고 시크한 듯 자연스럽게 말을 건넸다.
"여름방학 때 어떻게 지냈니?
그냥, 친구들하고 놀았어요.
음 그렇구나 뭐하고
그냥요, 게임도 하고..
엄마가 잔소리 하시니?
네 잔소리는 좀 하셨는데, 그래도 놀았어요.
방학을 생각하면 네 마음이 어때?
내가 이렇게 놀아도 되나?
시간낭비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건 너의 생각이고 마음, 느낌은 어때?
가볍지가 않아요. 왠지 마음이 무거워요.
그 이유가 뭘까?
모르겠어요.
(그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이의 눈망울이 흔들리고 눈시울이 살짝 붉어진다.)
그럼, 주말동안
마음이 무거워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마음이 무거워질 때 그 순간을 느껴보렴
생각하지 말고 느껴봐.
보통 그런 느낌이 들 때, 자신도 모르게
그 느낌에 고개를 돌려버리거나 보고 싶어하지 않을 수 있어.
그 느낌이 들때, 그저 그것을 잘 느껴보렴.
그렇게 말하고 나는 형진이를 기다리고 관찰했다.
녀석은 내가 왔으면 하는 시간에는 오지 않았다.
기다리는 시간이 지나 조금은 내버려두자 할 때
형진이는 어느 덧 무엇인가를 열심히 뒤적이고 공부하고 있었다.
여름방학 전후로는 무조건 냅다 엎드려있었던
녀석이 꾸준히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서로의 눈빛을 교환한 이후 어느 날, 똑똑 교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반가운 마음으로 누군가 봤더니 빼꼼히 얼굴을 내미는 녀석이 바로 형진이다.
드디어 아이가 왔다.
“요즘에 어때?
음.. 마음이 좀 편해졌어요.
그렇구나. 그렇게 바뀐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사실 제가 외동이에요.
엄마가 저에게 무척 잘해 주시긴 하시는데 잔소리도 많이 하시고 좀 무서워요.
(사실 형진이는 무척 온화하고 결이 고은 남학생이다.
이렇게 표현하면 다소 주관적이니 MBTI 성격유형 기질로 보면 NF 기질이다.
꿈, 낭만, 미래지향적이면서 사람들과의 교감을 중시하는 기질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잠시 침묵, 난 그 아이의 얼굴과 눈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공부는 하고 싶은데 뭔지 마음이 잡히지 않은데
엄마가 잔소리를 하시고 저는 그 소리를 들어도 도무지 마음이 잡히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난 번에 정민이가 이야기해 주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을때,
그 때는 잘 몰랐는데, 어느 순간 이제 좀 뭘 해 봐야 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선생님이 또 그러셨잖아요.
"지나간 것을 잊어버려라. 지금 2학기 시작이다.
" 무엇을 잘 해야지, 지난 번에는 70점을 맞았으니가 이번에 90점 이상을 맞아서
80점을 만들어야지 라는 생각조차 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이 수업시간이면 그 수업에 집중하고
노는 시간이면 쉬면서 화장실도 다녀오고
아침에 정해진 시간에 눈을 뜨면 옷을 입고 학교로 오고..."
라는 말씀도 그렇구요.
그저 저도 제 마음이 안정될 때 까지
그냥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어보았어요
나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도 하지 않았어요
그랬더니 어느 순간
뭔가를 좀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랬군. 샘이 너 기다린 거 알지?
네
기다리다가 샘이 언제 악수를 청할까 호시탐탐 보고 있었는데,
네가 스스로 마음을 잡고 이렇게 또 와 주어서 샘이 너무 감동받았어.
샘은 이 자리에 있을 테니 언제든 놀러오렴.
형진이를 보면서
마음을 터치해주고 공감해주고 기다려주고 그리고 바라봐 주려고 노력했다.
그 노력이 어느 정도 울림이 되는 듯 해서
그 자체로 참 고맙다.
외동이나 맏이들은 부모들과의 심리적인 거리가 가까울 수 밖에 없다.
부모입장에서도 ‘무엇인가 해 주어야 하는데,
이 시기에 내가 아이에게 해 주어야 할 것을 놓치는 것이 있다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과 책임감이 있다.
게다가 첫 아이에게는 모든게 처음이라
불안도나 사랑의 지수가 높을 수 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아이를 위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수고로움을 감내하면서
아이에게 무엇인가를 해 준다는 것이 아이와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로 마주하게 될 수 있다.
보통 부모로서 책임감이 있는 분들과 자녀들 사이에
오히려 여러 가지 소통의 애로사항이 생길 수 있다.
부모노릇 하기가 그래서 어렵다.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열심히 해도 안 되고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관심을 꺼도 안 되니 말이다. '열심히'의 기준은 무엇일까?
그것은 마음의 안정감과 연결되고
부모역할훈련의 저자 토머스 고든은
"아이들은 좋은 부모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솔직한 부모를 원한다." 라고 하고 있다.
안정감있고 솔직한 부모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자기 인식, 부모와 자녀와의 건강한 분리에 대해
우리 생활에 적용해서
마음과 행동의 변화까지 가져오는 것에 대해
늘 함께 고민하고 프로그램을 만들어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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