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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Direct 주연 Jan 29. 2024

마주하다2_옷 하나도 못 고른다고?

맏딸 콤플렉스 마주하다2_엄마와 4남매의 맏딸인 나

나의 대학 시절, 여대를 다녔던 나는

한 두 달에 한 번씩은 친정엄마를 학교 앞에서 만나곤 했다.


학식을 먹고 오후 수업이 일찍 끝나는 날인 수요일 오후

그 날도 엄마를 만나기 100m 전이다.


엄마는 약속 장소와 시간에 언제나 칼같이 나타나서

기다리곤 했다.

그날은 내 옷을 사는 날

여대생이 왜 엄마와 옷을 사느냐고?

그러게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꽤나 낯선 이야기일 수 있는데

그때는 몰랐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엄마가 골라주는 옷을 입고 나오면

"이건 아니다" 고개를 절래 절래

"음 괜찮아" 라고 말할 때는 좋아하는 내색을 크게 안 하셨다.


좋아하는 내색을 많이 하면

물건을 흥정할 때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그다지 좋지도 싫지도 않은 표정을 하고 옷 값을

약 50% 디스카운트 하면서 엄마의 흥정은 시작된다.

조금씩 올라가다 약 70% 정도의 가격에 물건을 사게 되어도

엄마는 크게 감정의 반응이 없었다.


옷을 고르고 나오면 엄마와 함께 떡복이라도 먹거 싶었던  "나" 와

딸의 옷을 골라주었으니 목표 달성,

그 후엔 곧바로 직진해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엄마"는

사뭇 다른 맏딸과 엄마였다.




대학교 3학년 때 친구 2명과 과천 놀이동산을 가기로 약속했다.

옷을 고르는데 지난 번에 산 옷을 입고 가라는 엄마

지난 번에 가죽 치마와 가죽 자켓을 함께 구입했었다.


검은색 무릎 살짝 위로 올라오는 가죽치마와

같은 색상의 가죽 자켓을 입고 나간 "나" 를

본 친구는 살짝 놀라는 눈치였다.


그 친구들은 캐주얼 복장, 청바지에 셔츠 차림...




그래서인지

난 지금도 내가 입을 옷을 고르는데 결정 장애가 있다.

정히 급할 때는 간혹 혼자 쇼핑해서 고르기도 하지만

마음 속엔 늘 불안이 있다.


'괜한 것을 사는 건 아닐까?'

'지금은 보기가 괜찮은데, 잘 안 입게 되면 어떡하지?'


물건을 들었다 놨다 반복하다가 

옷 가게에서 일하시는 분에게 미안해 하며 나오기 일쑤이다.



미국 정신과 의사로서 조지타운대학교 정신의학부 교수면서, 

가족치료의 선구자인 보웬(Murry Bowen) 은 

한 인간의 행동과 감정 양식은 가족 내의 상호작용에서 그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즉 가족 내의 역동을 중요시한 부모교육을 언급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사람이다.

그는 "자아분화" 사람의 독립성을 이야기한다.


보웬(Bowen)의 자아분화는 

어린이가 어머니와의 융합에서 벗어나서 

자기 자신의 정서적 자주성을 향해 나아가는 장기적인 과정이라고 보았다.


분화 척도가 높은 사람은 사고와 감정 사이에 균형을 이룰 수 있으며 

자제력이 있고 객관적일 수 있다. 

보웬이 말하는 분화척도가 높으려면 어린이가 어머니와

지나친 융합에서 벗어나 개별성을 가지고 독립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자아 분화 를 0~25, 25~50, 50~75, 75~100 수치로 환산하여 설명하기도 한다.

숫자가 높아질수록 자아분화가 잘 되어 독립된 개체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년간의 교직 생활 퇴직 이후 심리학을 다시 전공했다.

심리학과 교육학을 접목해서 부모교육으로 집중한 이유도

나와 엄마의 관계를 깊이 들여다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자아분화 척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보웬은 자아분화가 낮은 사람을 이렇게 표현한다.

"나와 타인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서 가족을 하나의 덩어리, 융합된 것으로 느낀다."


주말마다 친청이든 시댁이든 가서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나를 보살피면 이기적인 것이고

주변에 헌신하는게 최상의 가치라고 생각했었다.

나 보다 가족이 더 중요했고

그것이 어느 정도를 지나치면서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했다.


좋은 딸로, 엄마로 아내로 살기 위해서

그러니 충주에 있는 학교에서 교직생활을 하다가 서울로 이사를 왔어도

3년동안이나 충주와 서울을 출퇴근했다.

4시 반에 일어나서 아이들 준비시켜놓고 새벽 5시 반에 나와서 두시간 이상되는

고속버스를 타고 교무실에 들어가면 도어 투 도어로 3시간

또 다시 퇴근도 3시간 이상

 

밤 12시가 넘어서야 자게 되고 또 새벽 4시 반에는 일어나는 하루 하루가

3년이 지속되니 몸이 말을 듣지 않게 되었다. 

내 몸이 아닌 느낌..


건강상의 이유로도 학교를 퇴직할 수 밖에 없었고

그러니 마음도 바늘하나 들어갈 여유조차 없게 되었다.


좋은 00 가 될 수 없어서

모든 것이 한 순간에 저 바닥으로 떨어지는 느낌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다.


동생들과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3녀 1남의 명실상부한 큰 언니, 맏딸, 맏이

동생들은

언니가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했는데

엄마에 대한 양가감정이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왜 엄마에 대한 양가감정이 있는 걸까?


좋아해야 하는데 마냥 좋지많은 않은....

엄마와 잘 지내야 하는 맏딸

엄마의 사랑과 관심을 많이 받아서 

엄마의 바쁜 시간을 쪼개서 내 옷까지 골라주는 사랑을 받은 나....


가족에게 잘 하는 것으로 좋은 소리를 듣고 싶은 나


늘 중요한 사항에서 결정을 잘 못하는 나

중요한 결혼은 엄마의 반대를 무릎쓰고 한 나


 무엇인가 명료하지 않은 혼란스러운 느낌으로 40대 중반까지 달려왔다.


그렇게 난 40대 중반의 나이에

맏딸 콤플렉스와 온전히 마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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