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제목이 무섭다. 알고 있다. 왜 이런 글감을 가져왔냐 하면, 좋아하는 작가님의 죽음에 관한 에세이를 읽고 생각하다가 여기까지 왔다. 내가 죽음의 문턱에 있다는 것은 아닌데, 언제나 죽음이 가까이에 있다고 생각하는 편은 맞다. 그러니 늘 죽음의 문턱에 서있는 게 또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오랫동안 괴롭히는 병이 있기도 했고 지나온 길이 순탄치는 않았다. 네가? 라고 생각이 드신다면 전에 쓴 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님을>을 읽어보셨으면 한다. 그렇게 생긴 불면으로 나는 자주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고 그래서 수면빚이 아주 많다. 친구들이 "좀 잤어?" 물으면 "빚이 또 늘었다, 야" 대답하고 "너 그러다 빚쟁이 된다" 하는 농담을 주고받고는 했다. 죽음을 이야기하다 왜 갑자기 수면빚 얘기를 하냐고? 나는 내가 당장 오늘 죽는다면 행복하게 잠에 들 것 같다. 이제 밀린 잠을 자러 가 볼게요. 하며 죽지 않을까. 죽어보지도 않은 자의 죽음 소감이다.
이렇게 나는 죽음을 가까이, 또 쉽게 생각한다. 인생은 원래 내 맘대로 되지 않으니 내가 기를 쓰고 살려해도 죽게 될 수도, 기를 쓰고 죽으려 해도 결국 살 수 있는 거니까.
죽음에 대해 생각하다 죽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오늘 당장 조카의 생일 축하 영통을 해야 한다. 포켓몬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선물해줬는데 마음에 들었는지 그 소감을 들어야 한다. 내일도 죽지 못한다. 친한 동생이 보내준 그린티 아이스크림이 도착하니 그걸 먹고 맛있다고 연락도 해야 한다. 또 오랜만에 나오는 검정치마 앨범도 들어야 하고, 아직 글을 브런치 북으로 완성을 못했으니 그것도 마무리를 지어야 하니 8월에도 못 죽는다. 9월에 온에어 될 작은아씨들 드라마도 보고 싶다. 그러니 적어도 9월까지는 살아야 한다. 10월에는 언니 오빠들과 강화에 매년 먹으러 가는 새우를 먹으러 가야 한다. 연례행사다. 결국 나는 언제쯤 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음을 택할 수 있을까. 죽음을 택할 때면 이 모든 것이 내게 아무런 가치가 없어질까. 그래서 죽음을 택할 수 있게 되는 걸까.
그런 순간은 최대한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가도 또 사람일은 모르는 거니, 사는 동안 열심히 수면 빚을 갚고 내가 좋아하는 愛를 모으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죽음의 문턱에 있는 사람들에게 감히 묻는다. 오늘은 무얼 했고, 내일은 무엇을 할 것이냐고. 오늘 저녁은 무얼 먹었으며,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