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그림 작가님이 있다. 내가 이십대 중반쯤이었으니 거의 10년을 지켜봤다. 그 당시에는 지금보다 유명하지 않았지만 일상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그 시선이 좋아 자주 그림을 보았다. 연희동 작은 카페에서 전시를 한다 하여 일부러 보러가기도 했었다. 더콤마에이 였었나. 물론, 이제는 팔로워 수도 많고 전시 공간도 그때에 비해 엄청 커진 유명 작가가 되었다.
그때 전시를 보고 작가님을 만나 뵙지는 못했지만 방명록이라 써져있는 수첩을 펼치니, 조심스러운 말투로 글을 남겨달라는 문장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빼곡하게 남겨 놓은 글을 읽고 나 역시 몇 글자 남겼다. 그리고 이 수첩의 용도에 대해 생각했다. 아마 그림이 잘 안 그려지는 날, 마음을 채우고 싶은 날이면 이 수첩을 들여다 보고 또 들여다보겠지. 그렇다면 아마 이 사람은 작은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겠다.
내 멋대로 파악하고, 그 후로 가끔 작가님의 블로그에 들어가 그림 외에도 사진이나 글을 구경하고는 했는데 어느 정도는 내 생각이 맞았다. 그림, 사진, 글 모든 것에서 저런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어떨까, 하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냥 흘러가는 일상을 놓치지 않고 모두 다정으로 만드는 시선들이었다.
똑같은 것을 보고 다르게 느끼는 것은 사람에 따라 다른 것이 아니라 시선에 따라 다르다. 내 마음이 미울 때는 시선 역시 곱지 않을 테고, 사람이 언제나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는 없는 거니까. 가끔은 나 역시 잘 하던 것도 때려치우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 하지만 모든 것은 마음에서 투영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나도 당신도 세상을 완만한 곡선으로 바라봤음 한다. 그러다 보면 무언가가 나를 찌를 위험조차 없어지는 순간이 올 수도 있을테니.
친분이 없는 사람에게 메시지 같은걸 잘 보내진 않는데 이 작가님에게는 가끔 안부를 묻는다. 오랫동안 봐와서인지 꼭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너스레를 떤다. 잘 지내시냐고, 오랜만에 그림 구경을 한참 했다고, 좋은 밤 되시라고. 그러면 작가님은 꼭 답장을 해주곤 한다.
오늘도, 오랜만에 작가님께 메시지를 보냈다. 다정에 관한 글을 쓰고 있는데 작가님 생각이 났다고. 늘 그렇듯 잘 모르는 이의 메시지에도 "이렇게 가끔씩 반가운 인사를 받게 되면 오래간 그림 그리던 시간이 혼자가 아니었음을 실감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하고 답장이 왔다. 예나 지금이나, 작가님은 다정하다. 그리고 변함없는 시선들이 담긴 그 그림을, 나는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