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자와 듣는 자 중에 나는 듣는 자에 속한다. 말실수로 남에게 상처를 주게 될까 봐 조심하는 편이고, 그렇게 조심해도 여전히 뱉어놓고 집에 돌아와 그 말을 왜 했지, 라고 생각하는 일이 잦다.
친구들은 자주 내게 상태를 보고한다. 나는 요즘 이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 어디쯤 서있어. 내 코가 석자이지만 그래도 그 이야기를 듣는다. 최대한 정성스럽게, 한 문장도 빼놓지 않고.
어릴 때는 멋모르고 조언을 했다. 어차피 살아온 인생이 비슷한데, 조언할 게 뭐가 있다고 건방지게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내 경험과 생각을 총동원해 나름의 해답을 내리면 다행히 친구들은 대부분 만족해하며 돌아갔다.
여전히 친구들은 내게 묻는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아무런 조언도 해줄 수 없다. 그들의 고민이 이제 가볍지 않고, 내 말로 위로되지 않고, 해결 또한 해줄 수 없는 일들인 것을 안다. 그렇기에 그저 인생이 왜 이럴까, 라는 친구 말에 내 인생도 별 다르지 않아, 라 답하고 오늘 기분이 우울하다는 친구의 말에 그럼 오늘은 같이 우울해보자 한다. 머리가 복잡하다는 친구의 말에 지금 너랑 커피 마시면서 비 내리는 거 구경하고 싶다 하며 하나도 도움 안 되는 대답만 한다. 그래도 친구들은 여전히 나와의 대화를 대부분 만족해하며 돌아간다.
알고 있다. 그들이 내게 어떤 말을 원해서 묻는 게 아님을. 그저 답답해서 들리는 곳이라는 것을. 그러니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문을 열어두고, 네가 좋아하는 능소화 한송이 두고, 같이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 되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