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희귀난치병 환자로 산다는 것

너를 처음 만난 열여덟

by 오 지영

산다는 것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일이 닥치는 것이다. 이 글은 내 인생에서 계속 예상치 못한 순간을 마주했던 기록이고, 내가 앓고 있는 병을 소개하기보다는 병을 대했던 태도에 관한 글이다. 이 병을 처음 알았던 것은 스물둘. 하지만 이 병이 처음 진행되었던 것은 고작 열여덟이었다.


나는 당시 공부를 그리 잘하지도, 특별히 못 하지도 않는 학생이었다. 공부보다 석식시간에 사 먹는 월드콘 헤이즐넛 맛을 좋아하고, 염색이나 파마를 하고 싶어 방학을 기다리고, 친구들과 오랜 시간 함께하는 게 좋아 야자도 즐겁기만 했던 그저 평범한 고등학생.


여름방학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그 날은 열이 많이 났다. 온몸이 불덩이처럼 느껴지자 체온계를 찾았고, 체온을 재니 38.7도. 어지러운 증상과 구토도 함께 찾아왔지만, 몇 년에 한 번 있는 그냥 그런 날인 줄 알았다. 이유 없이 아픈 날. 장염이나 노로바이러스나 뭐 그런 평범하디 평범한 이유로 몸이 좋지 않은 날. 하지만 이상하게도 다음날이 되어도, 또 다음날이 되어도 열은 떨어지지 않았고, 평소에도 아픈 것에 무딘 나는 감기약을 이틀이나 더 먹고 나서도 차도가 없자 동네 내과로 향했다. 의사 선생님은 장염인 것 같다며 약 3일 치를 처방해주었다. 그렇게 한 달 동안 동네 내과를 3번 이상 방문했다. 내 장염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열은 39도를 한번 넘기더니 그 뒤로는 전혀 내려올 생각도 하지 않고, 40도를 넘나들며 나의 눈을 토끼 눈으로 만들고, 일상생활도 점점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4번째 방문이었나. 의사는 그제야 소견서를 써줄 테니 큰 병원을 가볼 것을 권유했다. 그때에도 겁은 나지 않았다. 원래 고딩은 별로 무서운 게 없는 법이니까. 나도, 우리 가족 모두 별일이 아닐 것으로 생각했다. 그저 의사의 말이 무척 드라마에서 나올 것 같은 대사다 싶었다.


큰 병원으로 옮기자마자 몇 가지의 간단한 검사들을 받았고, 결과가 나오자마자 당장 입원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급한 목소리와 부산스러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ESR, CRP, WBC 등의 검사 수치가 너무나 비정상적인 수치였던 것이었다.



ESR은 급성기 반응물질 중의 하나로 급성 염증이나 만성 염증의 지속 상태를 반영하는 지표다. 혈액을 가느다란 관에 넣어 수직으로 세워 놓았을 때 적혈구가 한 시간 동안 침강하는 속도를 의미하는데, 어떤 특정 질환을 암시하기보다는 몸 안의 염증성 반응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CRP는 C-reactive protain의 약자로 염증이 생기거나 조직이 손상되어 급성 염증 또는 감염이 있을 때 수치가 상승하게 된다.


WBC는 White blood cell의 약자로 백혈구를 의미하는데, 백혈구는 감염성 질병과 외부 물질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는 면역세포이기에 감염의 종류에 따라 증가 또는 감소가 나타난다.



수치는 너무나 비정상이었으나 MRI나 CT에서는 특이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해야 할 검사는 날이 지날수록 더욱 늘어갔다. 척수검사, 골수검사, 뇌 검사, 백혈병 검사까지 평생 할 검사를 그때 다 했다. 이유도 모르고 높이 솟아있는 염증 수치를 낮추기 위해 매일 항생제를 맞고, 차도가 없어 더 독한 항생제를 맞고, 그래도 아파서 마약성 진통제를 맞는 날이 계속되었다.


병명도 모른 채 계속 꽂혀있는 바늘로 인해 팔뚝은 고등어처럼 퉁퉁 부어버렸다. 더 이상 혈관이 보이지 않았고, 보이지 않는 혈관을 찾아 간호사 선생님들이 바늘을 찌른 채로 휘저었다. 아팠다. 꾹꾹 참고 있던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아마, 퉁퉁부어 버린 팔 때문이 아니라 예상하지 못했던 불안감 때문이지 않았을까. 울면서 수간호사 선생님을 부르던 어린 날. 달려오던 수간호사 선생님. 결국, 퉁퉁 부은 팔 대신 발등에 꽂던 바늘.


병원의 아침은 무척 일찍 시작된다. 새벽 5시가 되면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았는데도 팔에서 피를 뽑아가고, 맥박을 쟀다. 그 분주함에 어쩔 수 없이 잠에서 깨야만 했다. 6시쯤 되면 병실의 모두가 일어나 씻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7시면 모두 아침을 먹고 오전 회진을 기다렸다.


처음에는 신기했다. 살면서 병원에 이렇게 오랫동안 있었던 적이 없었으니 뭔가 특별한 사람이라도 된 마냥 그랬다. 생각보다 나는 병원복이 잘 어울렸고, 진통제나 항생제가 그동안 아프던 것을 줄여주었고, 매일 같이 친구들이 번갈아 가며 병문안을 오는 것도 좋았다. 어려서 가능했던 생각이었다.


신기했던 병원 생활은 몇 주가 계속되자 지겹고, 지루해졌고 곧 지침으로 다가왔다. 집에 가고 싶었다. 내 침대에서 자고, 우리 집 욕실에서 따뜻한 물로 1시간 내내 샤워를 하고 싶었다.


또다시 찾아온 주말. 언니가 나의 간호를 하기 위해 만화책과 과자를 가득 챙겨 병원에 온 날. 그래서 철없는 언니와 나는 함께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당시의 나는 진통제로 통증은 많이 줄었지만, 열이 내리지 않아 퇴원하지 못하는 상태였기에 대충 잰 체온계를 간호사 선생님께 건네면 집에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열이 내린 것을 이상하게 여긴 간호사 선생님이 다시 체크하며 우리의 거짓말은 금방 들켰고, 엄마한테도 혼나고 의사 선생님한테도 혼나는 것으로 끝났다.


그렇게 2주, 3주, 한 달. 여름이었던 창밖의 계절은 가을로 바뀌었고, 개학을 했고, 나는 학교에 가지 못했다. 대신 친구들이 수업이 끝나면 매일 병원으로 찾아왔다. 짧은 석식시간동안 병실에 들러 나를 보고, 내가 밥 먹는 것을 보고, 내 밥을 같이 빼앗아 먹고, 실없는 소리를 하며 웃다 다시 야자를 하러 학교로 떠났다. 그리고 나는 친구들의 애정으로 그 시간을 버텼다.


병원의 밤 역시 매우 일찍 찾아왔다. 9시만 지나도 병동의 불이 하나둘 씩 꺼졌고, 휴게실에 있는 TV 소리도 작게 줄어들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불 꺼진 조용한 병동을 지나 지하에서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사 왔다. 엘리베이터 옆 의자에 앉아 큰 창을 통해 달을 바라보며 엄마와 함께 먹었다.



“엄마, 나 언제 퇴원하지?”

“내일.”

“내일 못하면?”

“그럼, 내일모레.”



그렇게 우리는 내일모레, 또 모레, 또 모레를 기다렸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나서야 퇴원을 했다. 여전히 병명은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