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했던가. 아프고 나서 삶에 대한 애착이 생겼다고. 나는 무엇을 할 때마다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의미를 부여할수록 삶은 더 빛났다. 하지만 알지 못했다. 한순간에 이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부여 한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을 때 얼마나 힘들지.
길고 긴 겨울방학이 끝났다. 3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또 고열이 시작되었다. 해열제를 먹었지만, 전혀 열이 내리지 않았고, 꼭 그날이 다시 찾아온 것 같았다. 불편한 열감과 불안한 마음을 함께 안고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다음 날, 학교에 가 이미 1주일이나 지났지만, 수강신청도 모두 해놓은 상태였지만 뒤늦은 휴학계를 냈다.
또 입원을 했다. 이미 또 말도 안 되게 올라가 있는 수치를 확실히 내리기 위해 고용량의 스테로이드제를 썼다. 수많은 검사가 시작되었고, 열여덟의 여름이 반복되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드디어 내 병명을 알게 된 것이다. 내 질병의 이름은 다카야수 동맥염. 희귀 난치병으로 자가면역질환 중 하나였다.
자가면역질환은 인체 내부의 면역계가 외부 항원이 아닌 내부의 정상 세포를 공격하여 생기는 질병이다. 언젠가 인터넷 설명글에서 ‘팀킬’이라고 정의한 것을 본 적이 있는데, 무척 이해가 잘 되는 설명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루푸스, 베체트, 크론병 등 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질환들이 있기에 생소하지 않지만 내가 진단을 받았던 시기에는 자가면역질환이라는 단어 자체가 무척 생소했다. 내 몸안의 세포가 또 다른 세포를 공격하는 병이라니. 무슨 이런 병이 다 있는지. 다 같은 세포인데 그냥 사이 좋게 지내면 안되는 것인지. 한번에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다카야수 동맥염은 이런 자가면역질환의 하나로 대동맥에 원인이 분명하지 않은 염증이 생겨 혈관 벽이 두꺼워지고 혈관의 내부 공간이 좁아져 혈액이 잘 통하지 않게 되는 병이다. 이미 심장 대동맥의 혈관이 아주 좁아져 있었다. 뇌로 연결되는 혈관이 좁아지는 것이 최악의 상황이고,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약을 먹으며 잘 달래며 살아야 한다고. 약을 먹어도 병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기가 오면 지금처럼 고용량의 스테로이드제를 복용해야 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MTX를 복용해야 한다 했다.
MTX (면역억제제)
면역계 억제제로 암, 자가면역질환, 자궁외임신의 치료, 의학적 낙태를 위해 사용된다. 주로 유방암, 백혈병, 폐암, 림프종, 골육종 치료약물로 쓰이고 부작용으로는 구역질, 피곤, 발열, 감염 위험의 증가, 백혈구 감소 등이 포함되며 간 질환, 폐 질환, 림프종, 심각한 피부 발진이 포함될 수 있다.
스테로이드제
스테로이드제는 항염증 효과 및 면역억제 효과를 가지는 약물로, 염증을 빠르게 완화시키고 림프계의 활성을 감소시켜 면역반응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빠르게 완화하는 대신 부작용이 큰데 체중증가, 피부 질환, 혈당 수치 상승, 호르몬 부작용, 쿠싱증후군, 당뇨 등이다.
“그래서 MTX가 뭔데요?”
“면역억제제요? 면역을 떨어뜨리는 약이 있다고요?”
“네? 면역이 높으면 더 공격한다고요?”
“면역 높이려고 다들 비타민 먹고 홍삼 먹는데요? 뭐 이런 병이.”
“그런데, 잠시만요. 난치병이라고요?”
사실 병명은 중요치 않았다. 귀에서 난치병이란 단어만 맴돌았다. 단어를 자꾸 곱씹을수록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지상에서 지하에서 한순간에 추락했다. 누가 뒤에서 민 것처럼. 오랜 시간 찾아 헤맸는데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병명을 찾으면 그에 맞는 약을 처방받고, 치료할 수 있고, 그러면 덜 아플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병명을 알아도 바뀐 것은 하나도 없었다.
희귀 난치병 환자는 산정 특례 대상자다. 본인 부담이 높은 암 등 중증질환자와 희귀 질환자, 중증 난치 질환자에 대하여 본인부담률을 낮춰주는 나라의 좋은 제도다. 산정 특례를 신청하기 위해 질병코드를 찾았지만 없었다. 이 큰 병원에서 나와 똑같은 병을 가진 사람이 한 명도 없다니. 두 번째 충격.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전화해 질병코드를 찾아 직접 코드 신청을 했다. 이 병원에서 이 케이스의 첫 번째 환자가 되었다. 좋은 제도지만 동시에 꼬리표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이제 희귀 난치병 환자였다.
병원 길 건너에는 낡은 설렁탕집이 하나 있다. 나의 최애 국밥집이다. 늘 검사를 받거나 진료를 받고 나면 들러서 먹었다. 결과가 좋은 날이면 웃으며 먹고, 결과가 좋지 않은 날이면 아무 말 없이 눈물을 참은 채 밥을 입으로 밀어 넣었다. 스물둘에는 늘 아무 말 없이 밥을 먹었다. 마음을 다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고, 우는 날이 많아졌고, 나의 스물 둘은 그렇게 눈물에 먹혔다.
퇴원 후 나를 괴롭힌 것은 듣도 보도 못한 병명이나 난치병이란 단어뿐이 아니었다. 고용량의 스테로이드제를 오래 복용할 시에는 많은 부작용이 따른다. 면역력이 약해지기 때문에 많은 감염증을 유발하고, 구토, 탈모, 무기력증, 문페이스 등이 나타난다. 문페이스라고 불리는 쿠싱증후군은 얼굴이 점점 붓는 부작용인데 나는 당시 스테로이드제의 종류인 소론도를 1년 넘게 복용했고, 덕분에 얼굴은 터질 듯 부어갔다. 마치 호빵맨처럼. 가족들과 있을 때는 그정도인지 몰랐다. 그저 살이 좀 찐 것 같은 얼굴이네, 나중에 나아지겠지, 할 수 있었는데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러 나간 날 알았다. 친구가 나를 앞에 두고도 못 알아보는 광경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나서야.
나, 전과는 많이 다르구나. 나, 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서 놀라 하는 친구들의 얼굴을 보고, 괜찮지 않은 표정으로 괜찮다 하는 위로의 말을 듣고, 집에 돌아와 늘 울었다. 이 지겨운 약을 언제까지 먹어야 하냐고 엄마에게 가시가 돋친 말들을 내뱉었다. 엄마가 대체 무슨 잘못이 있다고.
1년을 그렇게 보냈다.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고, 마음을 겨우 추스르고 복학을 했다. 친한 동기들이야 이미 알고, 봤고, 나의 사정도 아니 아무도 더는 놀라지도, 놀리지도 않았지만, 여전히 학교에 많은 선후배는 나를 못 알아보고 지나쳤다 깜짝 놀라 하며 다시 돌아와 말을 걸기도 하고, 살이 왜 이렇게 쪘냐고 놀리기도, 얼굴이 왜 저러냐는 수군거림도 있었다. 별거 아닌 말도 상처가 되는 나이. 그 나이가 그랬다.
생각보다 부작용은 오래 지속되었다. 소론도 12알에서 0.5알에 도달할 때까지 전혀 나아지지 않고, 완전히 끊고 MTX로 바꾸고 반년이 지나서야 서서히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지하에 갇혀서 곪았다. 이름을 알면 친구가 될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친구가 되지 못했다. 나는 증오하고 또 증오했다. 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