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지하에서 지상까지

by 오 지영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난 그 아이와 친구다. 친구가 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볼꼴 못볼꼴 다 본, 엄청 친한데, 또 가끔 보기 싫고, 같이 보내야 하는데, 막상 친하게 굴면 짜증 나는 그러니까 말하자면 애증의 관계인 찐친인 것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오랫동안 지하에 내려가 있었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고, 아무와도 대화하고 싶지 않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친구들이 종종 안부를 물으면 "지하야." 대답하고는 했다. 성의 없지 않으며 나의 상태를 잘 나타낼 수 있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층 수에 따라 친구들은 나의 컨디션을 파악했다.


"지하 몇 층?"

"오늘은 20층"


"오늘은 몇 층?"

"지하 40층"


어느 날은 지하 50층 까지도 내려갔고 지상으로 올라오는 날은 손에 꼽았다. 그런 날들이 오래 지속되면 친구들은 날 꺼내러 왔다. 집 앞에서 "우리 지상이야. 나와." 하기도 하고,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아 하는 내게 "모자 쓰고 목도리 둘둘 하고 나와. 아무도 네 얼굴 안 볼 테니까." 하고는 가까운 서해 바다로 달렸다. 한 겨울에 두꺼운 패딩에 목도리와 모자를 쓴 채로 바다를 앞에 두고 차가운 바람을 맞았다. 속이 시원했다. 그리고 가끔은 "그래 계속 거기 있어. 나도 오늘 기분 더러운 일 있었어. 지하로 내려갈게. 같이 불행하자." 하곤 했다. 그 시간들이, 그 말들이, 그 행동들이 또 나를 버티게 했다.


친구들이 던지는 응원에 힘 입어 나는 더 버텨보기로 했다. 버티는 방법 중 한 가지는 상대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다. 나는 검색창에 ‘다카야수 동맥염’을 검색했다. 다 비슷한 수준의 복사 붙여넣기한 내용이었다. 다음 카페에 동일하게 검색했다. 환우 모임이 있었다. 우리나라에 고작 50명 정도. 환우거나 환우의 가족으로 구성되어있는 그 카페를 나는 자주 들락날락했다. 나보다 먼저 이 병을 만났을 사람들의 기록을 읽었다. 우리의 대화는 전문적 지식은 아녔지만 결국 병에 대해 제일 잘 아는 것은 환자 자신이기에, 반 전문의처럼 묻고 답했다. “다리가 어떻게 아픈가요?”라고 묻고, “저도 똑같은 증상이에요.” 하고 공감했다. “그럴 때 저는 이렇게 하면 좀 낫더라고요.” 같은 처방을 내리기도 했다. 물론 환우 모임이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보다 먼저 겪는 고통들을 고스란히 보고 겁을 먹어 끝까지 읽지 못하는 글들도 있었다.


나는 조금씩 아주 천천히 지상으로 올라왔다. 수면 위로 머리만 빼꼼 하듯이, 몰래 올라와 눈치를 살피고 다시 내려가기도 하고 가끔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지상 위를 아무렇지 않게 활보하기도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열아홉에 정성을 다하는 삶을 살았다면, 이번엔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살기로. 무언가를 하고 후회하지 않는 것이 아닌, 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일이 없는 삶. 내 인생의 세 번째 막이 올랐다. 어쩌면 인생의 세 번째가 아닌, 세 번째 인생의 막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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