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은 무엇일까. 30대인 지금 생각하는 어른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크고 작은 파도에도 요동치지 않는 사람. 그러려니 하고 흘려보낼 줄 아는 사람. 20대에 어른은 보호가 필요치 않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때의 난 늘 보호자가 필요했다. 병원에서도, 여행에서도, 집에서도, 어디에서도 내가 생각하는 어른은 되지 못했다.
무사히 졸업을 했다. 졸업하자마자 공공기관의 인턴을 거쳐, 대학도서관의 사서가 되었다. 무언가를 계속 도전하는 삶은 좋았다. 재미있었고, 가치 있어 보였고, 진취적 이어 보였다. 그래서 더욱, 도전을 감행했다. 내 몸이 버티는 한 열심히 굴려주리라.
도서관 사서 하면 다들 쉬운 직업이라 생각한다. 아, 그 앉아있는 사람? 책 많이 읽으니 좋겠네? 란 말을 많이 듣는다. 하지만 사서들은 안다. 사서란, 사서 고생하는 직업이다. 나는 외국도서 관리자였는데, 외국 신작들이 나오면 무엇을 살지 선정하고, 연구나 학술에 관련된 도서 신청이 들어오면 구매를 할지 판단하고, 구하기 어려운 외국도서들은 아마존에서 중고본을 찾아 들여오는 일이 주 업무였다. 그 외에 주제전문사서를 도와 대학원생들의 논문의 자료를 같이 찾거나 도서관 내 이용자를 응대하고, 독서토론회 맡아 대기업과 함께 매달 유명 작가를 모시고 독서토론회를 진행했다. 학교 디스플레이에 나오는 모든 포스터 역시 내가 만들었다. 5시 반 퇴근인데 5시에 일을 주는 상사도 있었고, 내일이 공휴일인데 내일까지 메일을 달라는 상사도 있었다. 일도 많고, 사람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견딘 건 어른으로서 나의 도전이라는 생각,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책이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일한 지 2년 정도 지났나, 회식을 마치고 돌아와 씻으려고 보니 한쪽 눈이 빨갰다. 내일 인공눈물을 사야지 하고 잠에 들었다. 다음날 일어나니 눈이 보기 힘들 정도로 충혈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치 이물질이 낀 듯 흐릿하게 보였다. 다른 쪽의 눈과 시력 차이가 많이 나 점심을 먹고, 직장 근처의 안과를 찾았다. 안과 선생님은 안약 2개를 처방해줬다. 이때가 5월.
그리고 6월, 나는 퇴사를 했다.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한쪽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으니까. 시력은 점점 더 안 좋아졌고, 안과 선생님은 차도가 없는 내 눈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할 뿐이었다.
- 근데 제가 지병이 있는데요.
- 왜 말을 안 했어요?
- 물어보지 않으셨으니까요.
우리 몸에는 얼마나 많은 혈관이 있을까? 그리고 내 몸 중 좁아진 혈관은 과연 몇 개일까? 안과에서는 큰 병원에 가보는 게 좋을 것 같다했다. 또 그놈의 큰 병원. 주치의 선생님은 당장 입원을 하라 했다. 네네, 그럼요. 저 그래서 퇴사했잖아요. 이렇게 될 줄 알았거든요.
안과 선생님도, 주치의 선생님도 내 병은 희귀병이라 잘 모르니까 그럴듯한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아마도”, “그럴 것 같네요.”, “예상이 되고요.” 대개 이런 문장이었다. 아, “지영씨가 더 잘 알 테지만” 도.
신기하게도 이 시기에 나는 울지 않았다. 가지가지하네 생각이 들뿐. 욕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한쪽 손으로 한쪽 눈을 가렸다, 치웠다 하는 행동을 자주 했다. 한쪽 눈이 영영 보이지 않게 되면 얼마나 시야가 좁아질지 궁금했다. 눈 영양제를 사서 열심히 먹어야겠다. 한쪽 눈 없이는 살 수 있어도 두 눈 없이는 사는 게 힘들 테니까. 웃기게도 그런 생각들을 했다.
소식을 들은 시집간 언니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어떡해, 너 어떡해”
“언니, 나한테 낙하산이 있으면 좋겠다. 천천히 내려가고 싶어.”
그랬다. 나는 또 내가 지하로 떨어질 것을 알았다. 그 전의 지하가 100층까지 있었다면 이제는 바닥이 어딘지 가늠이 안 되는 지하로. 그러니까 최대한 안전하게, 천천히 내려가고 싶었다. 두 발로 안전하게 착지해 여기가 바닥이네 하고 딛고 싶었다. 언니는 나의 말을 듣고 엉엉 울었다고 했다. 내가 불쌍해서. 하지만, 이제 나는 내가 불쌍하지 않았다.
입원 후에는 또 이 높은 수치가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검사가 시작되었다. 전과는 다르게 모든 검사가 응급으로 진행되었다. 조금 다른 공기를 느꼈다. 아무리 CT를 찍어도 그럴듯한 이유를 찾지 못해 레지던트 선생님들이 몇 날 며칠 밤새며 고생을 했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레지던트 선생님들의 성과를 손에 쥔 채 주치의 선생님이 내 병실에 왔다. 죽을 뻔했다고, 죽어서 병원에 오면 어쩔 거냐고.
나의 혈관들은 이미 좁아질 대로 좁아져 심장 대동맥을 포함해 목을 따라 턱 끝 부분까지 모두 좁아져있었다. 병이 너무 많이 진행된 것이다. 그날도 병실에서 먹겠다고 포장해온 설렁탕을 앞에 두고 엄마와 아무 말 없이 먹었다. 코를 훌쩍거리며.
겨우 끊었던, 내가 악마의 약이라 부르는 스테로이드제를 또 처방받았다. 12알.
그래도 좋았던 소식은 약을 먹기 시작하니 잘 보이지 않던 한쪽 눈의 시력이 꽤 돌아온 것이다. 그해 여름은 무척 예뻤다.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반짝이는 것을 실컷 구경했다. 두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어서 기뻤다. 그리고 여전히 기쁘다.
선생님은 죽을뻔했다며 놀라 했고, 병원에 너무 늦게 왔다며 나를 혼냈다. 그리고 그 때의 나는, 지하에 갇혀서 울기만 했던 스물둘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똑같은 상황이라고 꼭 똑같이 대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때, 가고 싶어 하던 회사의 공고가 나온 것을 보았다. 병실에서 노트북을 펼쳐 이력서와 자소서를 썼다. 그리고 잠시 집에 다녀온다고 거짓말하며 외출증을 끊고 1차 면접을 보고왔다. 입원 중에 면접 보기 퀘스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