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아무도 좋아해 주지 않는 너를

by 오 지영


친구들은 모두 반대했다. 이런 시기에 일을 또 시작하는 건 미친 일 아니냐고. 제발, 도전이고 뭐고 몸이 좀 나아지면 하자고.



나는 어릴 적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다. 엄마가 “다리미 뜨거워. 만지지 마.” 하면 얼마나 뜨거운지 꼭 손을 데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 하지 말라는 건 꼭 해보고 나서야 왜 하면 안 되는지 이해하는 아이. 그러니까 이번에도 해봐야 아는 것이다. 내가 이것을 버틸 수 있는지, 없는지는. 다들 불가능이라고 얘기하는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불가능 일지를.


가고 싶었던 회사에는 합격했다. 문제는 입사 예정일 이었는데, 아직 몸이 다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퇴원을 한다 하면 주치의 선생님이 화를 낼게 분명했다. 어떤 핑계를 댈까 고민하던 차에,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1주일 뒤 바로 입사 예정이었던 스케줄이 2주 뒤로 밀렸다. 몸을 회복시킬 시간이 생겼다. 처음으로 신이 내편을 다 들어준다며 웃었다.


스테로이드제를 복용하면서 회사에 입사했다. 처음에는 괜찮았으나 약을 먹은지 몇 주가 지나자 겪었던 부작용이 하나 둘 씩 또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색안경 끼고 나를 보는 것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일이었으니, 전 직장 퇴사 이유도, 얼굴이 붓는 이유도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부작용과 함께 신입 장기자랑도 하고, 보톡스 부작용이라는 소문을 들으며 일도 무사히 배웠다.


물론 모든 직장인이 바쁘고, 힘든 것은 알지만 방송계는 특히 24시간 바쁘게 돌아간다. 공휴일에도 일했고, 주말에도 일했다. 간혹 여행을 가도 노트북을 가져가서 틈틈이 일해야 했고, 제주도에서 비행기 결항이 되었는데도 새벽 비행기를 기어코 구해서 돌아와 출근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업무량과 스케줄이었다. 그럼에도 빠르게 돌아가는 방송계가 좋았고, 트렌드에 민감한 이 직업을 나름 좋아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나의 퀘스트는 매일 생성되었다. 이 회사에서 일하며 지낸 모든 시간이 내게는 퀘스트였다. 보상이 적은 퀘스트.


회사를 다니는 내내 수치는 높아졌다, 낮아졌다를 반복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목의 혈관 부분이 부었고, 그러면 숨을 쉬기 힘들어졌다. 심장이 아프고, 365일 중 364일 열이 나 겨울에도 얼음팩을 목에 두르고 잠에 들어야 했다. 여름 역시 에어컨을 틀고 자도 목의 열 때문에 잠에 들지 못했다. 하루에 한두시간 자고 출근을 했다. 그럼에도 버텼다. 여기서 포기하면 이제까지 쌓아 올린 나의 순간들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그렇게 올린 나의 탑에, 찬물을 끼얹은 사람이 딱 하나 있었다. 나는 나를 잘 아는 사람과 연애를 해왔다. 친구였을 때부터 나를 봐왔기에 나의 상황을 모두 이해하던 사람들. 내가 아픈 것을 핸디캡이라 표현 하지 않던 사람들.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던 사람들. 혼자 지내는 기간이 조금 길어질 때쯤, 친구가 해준 소개팅에 나갔다. 소개팅은 처음이었다. 애프터 신청을 받았다. 그때 알았다. 나를 원래 알지 못하는 사람과 만나면, 이 병에 대해서는 언제 이야기하는 게 옳은 걸까?


첫 만남 자리에서? 아직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너무 TMI다. 사귀기 전? 사귀고 난 후? 1년쯤 만나고 나서? 아무리 생각해도 1년쯤 만나고 나서는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세 번쯤 만났나, 이 남자의 눈에서 하트가 보일 때쯤 말했다. 남자는 도망갔다. 내게 상처를 줘서 미안하다고, 집에 아픈 사람이 있어서 그게 얼마나 힘든지 안다고, 나를 응원한다는 말을 남기고.


치가 떨렸다. 내가 이제껏 얼마나 곧고 바르게 쌓아 올린 탑이었는데, 당신이 뭐라고 이걸 무너뜨리나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남자의 말도, 사정도 이해 간다. 결혼을 생각할 때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볼 수밖에 없으니 이왕이면 건강한 사람이 좋은 게 당연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때는 어렸다. 내가 죽을병에 걸려서 나를 건사해달라고 부탁한 것도 아니고, 우리가 결혼을 하자는 것도 아닌데 지레 겁먹고 달아난 사람을 한 달 내내 친구들과 술안주로 씹었다. 전남친들도 함께 씹어주었다. 뭐 그런 놈이 있냐면서.


그렇게 경험했다. 내 병이 내 삶에 끼치는 제약 같은 것들을 하나하나 겪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도 좋아해 주지 않는 널, 감당하기 어렵다고 도망가는 널, 나와 무수히 많은 계절을 보낸 널, 내가 끝까지 안고 가리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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