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네가 곧 나의 원동력이었음을

by 오 지영



시간이 지나 해결해 준 것은 없었다. 단, 나이가 들며 달라진 것은 있었다. 여전히 나도 아프고, 이제는 나의 주변도 아프다는 것. 어릴 때야 억울하고, 왜 하필 나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갉아먹었지만, 이제는 내 친구도 아프고, 내 친구의 친구도 아프고, 누구는 갑상선이 안 좋고, 누구는 신장이 안 좋고, 누구는 공황장애고. 모두가 아프다.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아프다. 다들 아파서 내 아픔도 괜찮다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 같이 버티고 있으니 나 역시 버틸 수 있다를 말하는 것이다.


여전히 병은 날 괴롭힌다. 지난여름에는 ESR수치가 70이 넘었다. 술만 마시면 발이 붓고 아프길래 통풍인 줄 알고 요산 수치 검사를 받았는데 아니란다. 그러면 결국 범인은 얘다. 이렇게 크고 작은 증상들로 여전히 날 괴롭힌다.


지난여름부터 올봄까지 나의 퀘스트는 수치 내리기였다. 단, 스테로이드제 복용하지 않고 수치 내리기.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하였던가. 병원 18년 차는 주치의와 딜을 할 수 있다. 선생님은 가능하면 스테로이드제 복용을 권했지만 어떻게든 내려 보이겠다 약속하고 MTX만 처방받아왔다. 열심히 운동을 했고, 열심히 먹었고, 열심히 좋아하는 것들을 했다. 올봄에 30까지 내려왔다.


-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요.

- 선생님, 회사를 다니는데 어떻게 스트레스를 안 받아요.

- 일을 좀 쉬엄쉬엄하고요.

- 선생님, 직장인 맞아요?


내가 주치의 선생님과 제일 많이 한 대화다. 선생님은 늘 바쁜 내 직업을 안쓰런 눈으로 쳐다보셨다. 아파도 일 때문에 병원에 오지 않는 삶을 미련하다 하셨다. 발까지 통증이 번지자 몸 어디가 성한 곳이고, 성하지 않은 곳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앞으로 어디가 어떻게 더 나빠질지도 예측할 수 없었다. 20대에는 내 병이 도전의 이유가 되었다. 적어도 남들만큼 보고 싶었고, 남들만큼 하고 싶었다. 병이 발목을 잡는 무언가가 되게 하기는 싫었으니까. 하지만 이 병과 함께 인생의 반을 보내고 30대가 되니 이제 네게도 쉼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대에는 한 번도 들지 않던 생각이었다. 그래서 나는 안정적이고, 꽤 오랫동안 다닌 직장을 올봄에 그만두기로 했다. 내가 처음으로 가져보는 쉼이었다.



너를 알지 않았으면 더 쉽게 걸을 수 있었을 텐데, 그렇다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너를 알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을 아직도 가끔 한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결코 나는 나 혼자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네가 날 세웠다는 것을. 네가 있었기에 다른 흔들림에도 곧게 설 수 있었음을. 흔들려서 넘어져도 웃으며 다시 일어날 수 있었음을. 네가 곧 나의 원동력이었음을. 이제는 네가 곧 나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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