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내 삶을 돌본 다는 것, 나를 응원한다는 것

병원생활이 바꿔놓은 나의 열아홉

by 오 지영


몸속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내 병은 백혈병과 비슷했지만 백혈병도 아니었고, 그 와중에 매일 아침저녁으로 검사를 하기 위해 채혈을 하는데, 혈액이 몸속에서 다시 생성되지 않아 빈혈 수치가 급속도로 떨어졌다. 악재에 또 악재가 겹치는 상황. 일반인이 10이라면, 나는 4 정도의 수치였다. 먹어야 하는 약에 빈혈약이 또 추가되었다. 늘어나는 알약의 개수를 매일, 매일 확인했다. 빈혈 수치는 약으로 해결이 되지 않아 몇 차례 수혈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가끔 학교에 헌혈차가 오고는 했다. 헌혈하면 영화표도 주고, 간식도 주고, 대부분 친구들이 헌혈을 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모아둔 헌혈증을 친구들은 내게 가져왔다. 손에 든 몇십 장의 헌혈증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아마, 얼른 괜찮아지고 싶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어서 지나가길 바랐을 것이다.


그렇게 많은 검사를 했지만, 병원에서는 결국 병명을 알아내지 못했다. 온갖 항생제를 다 써서 수치를 내려놨을 뿐이라고, 그러니 정기적으로 와서 검사를 받고 혹시나 다시 아프면 꼭 응급실로 오라는 안내를 받고 퇴원을 했다.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나의 병원 생활을 지켜봐 주고, 나의 빈자리를 속상하다 해주었던 친구들 곁으로 돌아가 예전처럼 친구의 반에 놀러 가 머리를 묶어달라 조르고, 다시 매점에 들러 월드콘 헤이즐넛 맛을 사 먹고, 수업시간에 편지를 쓰고, 운동장을 보며 음악을 들었다.


찬바람이 코를 스쳤다. 겨울이 코앞에 온 것이다. 이미 2학년 2학기 중간고사를 보지 못한 상태였고, 그 이야기는 수시는 물 건너갔다는 이야기였다. 나 때는 수시 전형으로 대학을 가기가 더 쉬웠던 때였다. 아무리 공부를 특출나게 잘하지는 않았어도 남들 다 쓰는 수시를 나 혼자 못쓴다는 이야기는, 이상하게도 큰 병원을 가보라고 하던 의사의 말보다 더 겁이 났다. 나는 뒤늦게 수능 공부를 시작했다. 반에서 수시 전형을 포기하고 정시 전형만 준비하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아마 누군가 내게 “인생의 터닝 포인트는 언제였나요?” 하고 묻는다면 첫 번째는 이 시기를 말할 것이다. 퇴원한 후의 나는 전과는 달랐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열심히 살게요. 뭐, 이런 마음은 아니었다. 단순하게 말하면 삶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달까.


나는 욕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오래 해오던 것들을 그만두게 되어도 욕심이 없으니 아쉬움도 없었고 그래서 포기도 쉬웠다. 초등학생 내내 장래희망 칸에 발레리나를 적었다. 꽤 오랫동안 해오던 발레를 그만둘 때도 아쉽지 않았다. 많은 것들을 쉽게 포기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병원 생활을 겪고 나니 삶에 애착이란 것이 생겼다. 많이 아팠고, 나보다 더 아픈 사람들을 내 눈으로 목격했다. 아주 조그만한 아이 팔에 주렁주렁 달려있던 링거, 베드에서 한번도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만 있던 할머니, 할아버지. 병원은 삶이란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무엇을 하든 이왕 하는 거 정성을 다하고 싶었고, 살면서 누리는 것들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고3 첫 모의고사 점수는 형편없었다. 나름대로 노력했는데 점수는 노력하지 않았을 때와 비슷했다. 예전 같으면 분명 포기 했을 텐데, 낙담했을 텐데, 포기하지 않았다. 물론 그때의 나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기도 했다. 몸이 아프다고 대학을 안 갈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열심히 살고 싶었다. 하필 그 생각을 고3 때 했다. 덕분에 하루에 4시간도 못 자며 나의 모든 시간을 의자에 할애했다. 매일 밤, 잠들며 기도했다. 좋은 대학에 가게 해 주세요, 가 아닌. 이 시간을 나의 몸이 버티게 해주세요. 제발.


몇 번의 모의고사를 더 치르니 추위가 찾아왔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늘 춥다는 대망의 수능 날. 친구들은 이미 수시에 붙은 상태였고, 수능 점수가 상관없거나 몇 과목만 3등급 이상을 받으면 되는 정도였다. 나만 정시 100%. 친한 친구 10명 정도를 포함해 모두 같은 시험장소를 배정받았고,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은 내게 잘 봤냐는 질문을 하러 뛰어왔고, 점심시간은 봄 소풍이 따로 없었다. 책상을 다 붙이고, 반찬을 다 섞어 비빔밥도 해 먹었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보려고 가져갔던 요약 노트는 내 가방에서 한 번도 나오지 못했지만, 아직도 그날이 생생하게 기억되는 것을 보면 즐거운 날이었음에는 분명하다.


물론, 원하는 점수는 나오지 않았다. 노력했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았다. 정성을 다하면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정말 단 하루도 허투루 보낸 날이 없었다. 열심히 산다는 거, 중요한 거구나. 내가 내 삶을 돌보며 산다는 것, 내가 나를 응원한다는 것. 지금도 무언가를 열심히 해내야 할 때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삶에서 가장 열심이었던 열아홉.


수능을 봤고, 무사히 더 아프지 않고 졸업을 했다. 그리고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예쁘디예쁜 스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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