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오래된 인연들의 연락이 올 때가 있다. 그게 3년 만이기도, 5년 만이기도, 심지어 대학 졸업하고 처음이기도 한데, 잘 지내?라고 묻는 말에 혹시 결혼해?라고 장난 섞인 대답을 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반가워하는 편이다. 그리고 궁금해한다. 이 사람은 무얼 하다 내 생각이 났고, 생각이 난 걸로 그치지 않고 내게 연락을 했을까. 누군가 생각난다고 해서 굳이 휴대폰을 꺼내 오랜만에 그 사람 이름을 검색해서 잘 지내냐고 묻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안부를 주고받는 것은 즐겁다. 내가 전혀 즐거운 상태가 아니어도 대개 그렇다. 몇 주 전 대학 동기와는 그동안 잘 지냈어?라는 물음에 우리 서로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지만 잘 지냈다고 치자 하며 웃었고 대학로를 지나다 생각이 나서 연락했다는 동기 오빠에게는 최대한 그 시절의 나처럼 신나게 장난을 치며 살아있었냐고 대답했다.
그때의 사람들은 지금의 모습이 많이 변했더라도, 그게 설사 내가 좋아하던 모습이 아니더라도, 그 시절의 모습으로 보게 되는 것 같다. 2007년의 필터랄까. 그늘지지 않은 얼굴에, 환하게 웃는 장난기 어린 모습, 모난 듯 모나지 않은 말투, 만나면 제일 먼저 묻는 밥은 먹었어?라는 안부. 그래서인지 나 역시 서른 중반에도 마치 스무 살 마냥 어리광을 부릴 수 있고 어른인 척 교양 있는 대화가 아니고 느낌표 잔뜩 붙인 감정 실린 대화를 하게 된다. 마치 모든 것이 재밌고 기대되었던 그때의 나처럼.
그들과의 대화는 주로 옛 추억을 회상하는 것에서 시작해 회상으로 끝나는데, 이 역시 나만 그때를 그리워하는 것 같지 않아서, 모두 그 시절 우리를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별 이야기가 아님에도 마음이 포근해진다.
우리는 그때 왜 그렇게 웃었을까. 모든 것을 처음 겪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설렜을까. 분명 고민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왜 기억나지 않을까. 272 버스를 타고 창경궁을 지나는 길에 가득 펴있던 꽃, 우리가 시험기간마다 가있던 대학로 투썸, 공강 시간마다 가서 빙고 하며 시간 때우던 커핀그루나루, 고즈넉한 성북동 수연산방, 밤에 내려오는 길 먹던 매운 어묵, 막차 시간 놓치지 않으려 뛰던 시장길, 초록색 2번 버스, 미래관 잔디밭, 낙산공원에서 보던 야경, 수없이 간식으로 먹던 카페테리아 치즈케이크. 나폴레옹에서 사 먹던 초코빵. 학교 앞 낡은 호프집. 지금은 사람보다도 더 달라져 있는 그 길들.
영원한 것은 없다는 걸 아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하나쯤은 그때의 그 모습으로 남아있는 게 있다면 좋을 텐데.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수연산방에 들른다. 그곳에서 사람도, 그때의 지나친 것들도 그리워 자꾸 뒤를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