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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 로지 Sep 22. 2022

표현에 서툴러서 미안해


오늘 아침에 언니 생각이 났다? 근데 갑자기 언니 없으면 나 어떻게 살지? 그런 생각이 든 거야. 그랬더니 언니가 너무 소중한 거야. 내가 표현을 잘 못하지만, 그래도 사랑해.


귀여운 말에 웃음이 났다. 친한 동생은 늘 그렇게 말한다. 언니, 내가 표현이 서툴러서 미안해. 주위에서도 나한테 표현 좀 하래.


그러면 나는 답한다. 이상하다. 나는 한 번도 네가 표현에 서툴다고 느낀 적이 없었는데, 그 사람 너한테 안 소중한 거 아닐까?


너는 이상하리만치 내가 혼자인 날이면 전화를 걸던 아이였다. 술을 진탕 마시고는 술의 힘을 빌려 언니, 사랑해 를 외치던 아이. 내 입에서 나도, 사랑해 를 말하게 하는 아이. 난 전화하는 것을 즐겨하지도 않는데 휴대폰에 밤늦게 네 이름이 뜨면 웃음이 났다. 이것이 또 술을 마셨군, 하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우리의 대화는 아무 내용 없이 주로 사랑을 말하는 것에서 시작해 사랑을 확인하는 것으로 끝났다. 내가 너를 이렇게나 생각하고 있음을 통보하듯이. 시시콜콜 너의 직장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았다. 네가 아무에게나 그런 소리를 하지 않는 것을 아니까. 그게 감정을 덜어내는 것이라면, 이왕이면 내게 덜어내길 바랐다.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날 급하게 찾던 아이. 그래서 네게 나의 존재가 어떠한 사람인지를 늘 각인시키는 아이.


그런데, 왜 매번 표현에 서툴다고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내가 본 너는, 늘 사랑이 넘치는 아이인데. 누군가에게 사랑한다고 외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아이인데. 그래도 그것을 아무에게나 주지 않는 것을 알아서, 네 표현이 내게 닿을 때마다 더 귀하게 받고는 했다. 아무것도 아닌 네 말이 혹시 고민을 하고 건넸을지도 모르니. 나는 그만큼 너를 잘 알고 있으니.


사랑한다는 말을 부끄럽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아니, 쑥스러웠다 해야 하나. 남자 친구에게도 그 말을 하는 게 어려워 조.. 좋.. 좋아해,라고 대신하거나 상대방의 말에 나도,라고 대답하거나 그저 미소로 넘기고 말았던 때가 있었다. 표현을 적게 하는 게 멋있어 보였나. 표현할수록 내 사랑이 작아지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지금은 부끄러운 게 잘 없는 나이라서, 나는 여기저기 사랑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이 사람 저 사람 다 사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귀여운 동생처럼 누군가에게 솔직하게 사랑을 말하는 사람이 되려 노력한다.


오늘 오랜만에 연락을 주고받은 친구에게 마지막에 사랑한다고 했더니 남편에게도  들은 말이라는 답장이 왔다. 사랑  하며 살자, 우리.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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