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음악에는 장면이 얽혀있다. 아무리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고, 특정 음식을 먹거나, 음악을 들을 때면 그 시간 속에 가서 서있고는 하는데 그게 가끔은 싫기도, 가끔은 좋기도 하다.
크림 브륄레만 보면 친구가 먼저 맛보고 날 데려가 짠 하고 사줬던 스무 살 즈음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런 디저트가 있구나,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게 참 많네, 하며 맛있게도 먹었다. 삼청동의 고풍스러운 디저트 집에서 설탕판을 톡톡 숟가락으로 깨어 먹고 그런 나의 반응을 지켜보고 있던 친구의 얼굴이 기억난다. 처음 맛보는 디저트가 맛있어서, 친구는 내가 만족해해서, 둘이 기분 좋게 삼청동길을 내려오며 느꼈던 그날의 밤공기 까지 모두.
엄마, 아빠가 보통의 집처럼 살기 위해 노력했던 그날에 아빠 역시 여느 아빠들 처럼 자주 통닭을 사 왔다. 아빠 손에 통닭이 들려 있는 날은, 가장 힘들었던 날이었을 거라는 것은 나중에 다 크고 나서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글을 보고 나서야 알았다. 그래서인지 통닭은 은연중에 내게 특별한 음식이 되었고 내 소설에도, 글에도 무척 자주 등장하는 음식이 되었다.
20대 때 남자 친구와 듣던 메이트의 노래는, 아직도 들으면 우리가 버스 안에서 한쪽씩 이어폰을 나란히 끼고 어깨를 맞댄 채 듣던 장면이 떠오르고, 지금도 자주 듣는 존박의 그 노래는 헤어졌던 날로 돌아가기도 한다.
친구는 브로콜리 너마저 음악을 들으면 일산으로 돌아오는 921 버스가 생각난다고 했다. 맞다. 많은 시간을 버스에 할애하던 시절 우리는 그 음악을 들었었지. 안돼요- 로 시작하면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를 순 없어요,라고 저절로 흥얼거릴 수 있을 만큼.
좋아하는 김동률의 2집에 수록된 곡들을 들을 때면 언니 CD 플레이어를 빌려 듣던 기억이, 힙합을 들을 때면 고등학교 풍경이 유독 떠오른다. 창가에서 친구와 나눠 듣던, 음악들. 야자시간에 노트에 쓰던 가사들.
하지만 이상하게, 모두 과거의 일이다. 작년에, 재작년에 내가 누구랑 무엇을 먹었는지, 어떤 음악을 들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소중한 것을 놓치고 살고 있는 것인가. 지나간 시간들을 곱씹으며 사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쓸데없는 짓일 지라도 내게는 소중한 짓인데 말이다.
그래서 지난 기억들을 소환해본다. 잘 기억나지 않는 장면들을 주섬주섬 주워 곱씹어본다. 봄에 오산에 다녀오며, 친구의 차에서 그럴 때마다를 들었다. 늦은 밤, 달리는 차 밖으로 벚꽃이 피어있었다. 봄 속에 내리는 눈. 몇 해 전 이승환의 새 앨범이 나오고, 제주에 갔다. 차 안에서 그 앨범을 열심히도 들었다. 그래서 나는 다 너야를 들으면 그때의 제주 풍경이 떠오른다. 잊고 사는 것에 익숙해지지 말아야지. 사소하지만, 순간들을 기억하고, 기록해야지, 다짐하게 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