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생과는 4살 차이로 마치 하숙집 건넌방 같은 사이다. 복도에서 마주치면 인사하는 사이. 요즘 별일 없으시죠? 하고 묻고 각자 밥을 먹고 들어가는 사이. 그렇게 지내다, 동생도 나도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우리는 같은 시간에 밥을 먹고, 저녁이면 함께 맥주를 마시고,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냉장고에 있는 바나나 우유와 허쉬 드링크 둘 중 뭐 먹을래,라고 묻자 동생이 답했다. 누나 먹고 남은 거. 그러더니 곧이어 말했다. 바나나 우유 먹어, 누나 좋아하잖아. 내가 바나나 우유를 좋아했던가? 바나나 우유 안 먹은 지 몇 년 된 거 같은데, 좋아하면 일 년에 몇 번은 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다 생각이 났다.
동생이 학생 때 편의점을 집만큼 달고 살던 때. 누나 뭐 사다 줄까, 라는 말에 음, 바나나 우유? 라고 한번 말했더니 동생은 그 뒤로 편의점에 들를 때마다 바나나 우유를 사 왔다. 잊고 살았다. 내가 바나나 우유를 자주 먹었던 것조차.
나는 동생을 제일 많이 혼내는 사람이었다. 나쁜 말 못 하는 엄마 대신, 관심 없어하는 언니 대신. 혼낼 일이 있으면 총대를 메는 건 언제나 나였다. 그럼 미워할 만도 한데, 동생은 고민이 생기면 항상 내게 찾아왔다. 요즘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 이런 고민이 있어, 이런 계획이 있어. 그리고 나는 동생이 이렇게 말할 때면 대부분 그것을 지지했다.
엄마는 요즘 내게 진작에 글쓰기를 했으면 좋았으련만, 하는 소리를 자주 한다. 그 말에 그러게, 문창과 그때 떨어지고 재수해서 또 문창과를 갔어야 했나. 적어도 글 쓸 때 스트레스받지는 않으니까. 하고 대답했다. 옆에 있던 동생이, 그럼 누나는 글 쓰는 걸 좋아하는 거네, 많이.라고 말했다. 너한텐 어떤 게 그래? 라고 물었더니 피아노라 답했다.
피아노.
동생은 긴 시간 동안 피아노를 쳤다. 우리 중에 제일 오랫동안 피아노 학원을 다녔고, 잘 친다고 인정도 많이 받았다. 아마 대학도 피아노를 전공하고 싶었겠지. 하지만 예술은 엄청나게 뛰어나지 않으면 돈도 안되고 성공도 어렵고 미련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서 동생은 좋아하는 피아노를 계속 칠 수 없었다. 결국 피아노와는 전혀 다른 공대에 들어가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웠다.
지금 동생은, 영상 편집을 배워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다. 스스로 배우고, 스스로 선택한 일. 아빠는 워낙 구시대 사람이라 여전히 동생에게 취직할 것을 종용하지만, 나는 동생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월급 받고 사는 것이 제일 좋은 것이란 걸 너도 알고, 나도 알지만 그래도 이제는 잘하는 거, 좋아하는 거 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피아노 위에서 손가락이 날아다니던 너의 어린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