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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 로지 Oct 02. 2022

해걸이

우리 동네는 아파트 단지인데, 특히나 감나무가 많다. 그래서 가을이면 단지 내의 사람들이 모두 모여 감 따기 축제를 한다. 분명 도시 한복판에 있는데, 이 날이 되면 시골같이 느껴지곤 한다. 물론, 나는 참여한 적은 없다. 하지만 아빠와 동생은 매년 참여해 상자 한가득 감을 따온다. 감나무의 감이 익어버리기 시작하면 길을 더럽히거나, 차 보닛 위로 떨어지기도 해서 그전에 빨리 따야 하는데, 올해는 산책하면서 보니 감의 양이 많지 않았다.


그것을 해걸이라고 한다. 과실이 한해에는 많이 결실되고, 그다음 해에는 결실량이 아주 적은 현상이 반복되는 .



며칠 전 친구와 성취감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글을 쓰는 거니, 무언가 보상이나 눈에 띄는 결과가 보이지 않으면 성취감을 느낄 수 없다 했고, 친구는 그런 나를 나무랐다. 네가 쓴 글의 양이나, 배우지 않았음에도 써내려 간 글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정의해 놓은 성취감이 그렇게 밖에 되지 않으니 여전히 느낄 수 없었다.



그러다 감나무를 보며 생각한 것이다. 나는 올해 해걸이다. 결실량이 아주 적을 수도 있는 해. 무언가를 결과로 나타내지 못할 수도 있는 해. 그렇게 생각하니, 이 성취감에 대한 생각이 어쩌면 조금은 나아지는 듯도 했다.


늘 그래 왔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도 해걸이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늘 최대의 결실만을 바라고 살았다. 이만큼 노력했으니, 이만큼의 결과가 꼭 따라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환경이나, 상태에 따라,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이유로, 그저 해걸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는 적은 열매를 손에 쥘 수 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시간이 또 흘렀다. 어느새 10월이다. 손에 아무것도   없어도, 괜찮다. 올해는 해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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