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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 로지 Jun 15. 2022

난치병 환자에게 소원빌기란

그날은 석파정에 갔다. 왕이 사랑한 정원을 거닐고 물을 품고 구름이 발을 치는 자연을 보았다. 그리고 소원을 빌어야 하는 많은 것들을 했다. 개구리 석상의 품에 동전을 던졌다.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빌지 못했다. 언니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한참을 걷다 너럭바위 앞에 섰다. 소원을 들어준다는 너럭바위.


우리는 차례대로 서 두 손을 모았다. 언니들은 건강을 빌었다고 했다.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초 앞에서, 바위 앞에서, 등 앞에서, 소원을 비는 행위를 할 때면 모두 제일 먼저 건강을 빌었다. 건강해야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니까.


나는 눈을 감았다. 지금 별로 건강하지 않은데 지금 보다 나은 건강을 원합니다, 한다면 들어줄까. 난치병인데 낫게  주세요, 하면 나을  있을까. 그래서 조금 나은 건강을 얻는다면  삶은 달라질까. 그러다 결국 아무 소원도 빌지 않은  눈을 떴다. 그리고 언니들의 소원을 들으며 웃었다.


집에 돌아와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잠에 들기 전, 소원을 빌었다. 소원을 빌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게 해 주세요. 결국, 제일 큰 소원을 빌고야 말았다. 누군가가 듣는다면 난감해할 소원. 결핍이 없는 삶, 충만한 삶, 후회하지 않는 삶, 그래서 소원을 빌지 않아도 되는 삶. 내 소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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