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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 로지 Jul 05. 2022

용서


살면서 용서를 구하는 일이 더 어려울까, 용서를 하는 일이 더 어려울까. 이렇게 생각하다 귀찮으니 둘 다 없었으면 좋겠다 싶다. 이제는 그런 걸 구분하기도 싫고, 인생을 복잡하게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그래도 떠오른 김에 굳이 생각해보자면, 나는 용서를 하는 일이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


용서를 구할 때는 상당히 저자세가 된다. 일단 눈에 진심을 담아야 하고 텍스트라면 쓸데없는 이모티콘은 붙이지 않는 것이 좋다. 미안해, 한마디가 아니라 내 어떤 말이 너에게 상처가 되었는지 알아, 나도 가끔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너에게 상처가 되었다면 내가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 하더라도 상처를 준 것이 맞아, 진심으로 미안해,라고 내가 왜 용서를 구하는지, 상대방의 기분이 왜 상했는지, 그걸 지금 내가 이해하고 있음이 나타나야 한다. 그리고 그 사과를 수용할지 아닐지는 상대방의 마음에 달려있다.


용서를 하는 것이 더 어렵다 느끼게 된 것은 진짜 용서와 가짜 용서가 있기 때문이다. 내 기분이 내키지 않아도 상황 때문에 억지로 용서를 해야 할 수도 있고, 모두의 관계가 엮여있기에 평화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용서를 하기도 한다. 상대에게 이제 기대할 것이 없어 더 이상 무엇도 묻고 싶지 않아 용서를 하기도 한다. 이렇게 가짜 용서를 할 수 있기에 용서는 더 어렵다.


네가 나한테 했던 말이 이렇게나 상처가 되었음을 말로 꺼내 앞에 내보이고, 아무런 이유 없이 그저 상대의 행동을 이해해보고, 미안하다는 진심을 받아들이고, 그 사람을 다시 안아 줄 수 있는 것. 내가 생각하는 용서다.


나이가 들면서 용서는 빨리 구해야 한다는 지혜를 얻었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은 오랜 시간 나를 봐 온 사람들이고, 그렇기에 대부분 앞으로도 볼 사람들이기에. 그런 사람들에게 예민하게 굴거나 나도 모르게 상처를 줄 때면 바로 사과한다. 내가 방금 한 말은 다시 주워 담고 싶어, 미안해, 하며. 애초에 안 주면 참 좋을 텐데.


조금 더 살면, 모두 이해할 수 있을까. 상대의 마음을 꼬아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을까. 그래서 용서를 쉽게 구하고, 쉽게 하는 사람일 수 있을까.


그런,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도 어른이지만, 그런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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