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20~23>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바다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 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움직입니다. 움직이지 않는 것은 죽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명을 살아 움직이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모든 생명은 소중합니다.
미물처럼 보이는 작은 생명체라고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서 사람보다 작다고 덜 소중한 생명체는 없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작은 것들 없이 큰 것들이 살아 있을 수 없습니다. 먹이사슬 때문이 아닙니다. 모든 생명체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피조물입니다.
창조의 다섯째 날, 하나님은 바다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물인 물고기를 만들었습니다. 원래 바다는 땅을 뒤덮어 생명이 존재할 수 없는 죽음의 공간을 상징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바닷물에 직접 명령하셨습니다.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물들이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무생물의 바다가 물고기들이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을 나는 새들을 창조하셨습니다. 텅 비어있던 하늘이 활기차게 날아다니는 새들로 생기가 넘쳤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는 아무것도 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 움직임도 없는 황폐한 곳이 아니라 생명의 움직임이 가득한 곳입니다.
하나님은 이것들을 보시고 좋다고 하셨습니다. 바닷속에 물고기들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숲 속에서 새들이 날아다니며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면 생명력이 충만한 자연의 신비가 느껴집니다. 물고기들이 살지 않는 바다는 죽은 바다입니다. 하늘도 마찬가지입니다.
물고기와 새는 하나님으로부터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을 '명령으로'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약속입니다. 모든 생명은 생명을 낳을 때 비로소 생명의 의미와 기쁨을 아는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이 움직이는 물고기와 새들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곳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람이 생겨나기 전에 물고기와 새들이 먼저 하나님의 복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물고기와 새는 우리의 식량이 되기 전에 원래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은 소중한 생명체입니다. 그들은 사람의 생존을 위한 양식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명체입니다. 예수님은 공중의 새들도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는 귀한 존재라고 말했습니다(마 6:26).
작은 생명들이 온 세상에 생기를 불어넣어 줍니다. 그들이 살아 움직이지 않는 세상은 죽은 곳입니다. 사람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버들치가 시냇물에서 사라지고 꿀벌이 줄어드는 세상은 창조 이전 죽음의 상태로 후퇴합니다.
한강 작가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 사건의 끔찍한 희생 이야기를 말하기 전에 그만큼의 분량으로 20gm도 안 되는 앵무새의 안타까운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사람과 앵무새가 가진 생명의 무게에 아무런 차별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 소설에서 한강 작가는 새처럼 작은 생명들을 향한 존중과 애정이 사라지면 죽음의 폭력이 난무하게 된다는 사실을 가슴이 시리도록 아프게 호소합니다. 그것들은 세상을 가득 채우는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이 부여하신 생명은 차별이 없습니다. 작지만 존귀한 생명들을 향한 감수성과 사랑이 세상을 파멸에서 구원합니다. (글/이효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