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24~28>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지금 역사상 최고의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역사상 경험해보지 못한 끔찍한 사건들이 매일 같이 벌어지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 목숨이 참 가벼워 보입니다. 너무 쉽게 사람을 죽이고 너무 많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시대입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20세기 초반부터 세상을 휩쓴 실존주의 철학과 문학이 주장한 것처럼, 삶은 아무런 목적도 의미도 없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에 던져진 부조리한 것일까요? 삶은 내 마음대로 기획하고 조종하고 낭비하고 방기해도 되는 것일까요? 내가 어떻게 살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내 자유인가요?
성경의 창조 이야기는 이러한 질문들에 명백한 답변을 제시합니다.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위해 만드신 하나님의 특별한 존재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삶은 부조리가 아니라 소명입니다.
창조의 여섯째 날, 하나님은 마른땅 위에서 움직이며 살아가는 생명들을 창조하셨습니다. 먼저 모든 종류의 동물들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땅에게 가축과 기는 것과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고 명령하셨는데, 이는 하나님이 흙으로 이들을 빚어 만들었다는 뜻입니다(창 2:19).
이어 하나님은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생명체들과 달리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만들었습니다. ‘형상’이나 ‘모양’은 같은 뜻을 강조하는 중어법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은 남자 여자 차별 없이 하나님의 성품을 지닌 하나님의 지상 대리인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피조물들과는 달리 사람에게 특별한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사람은 이 사명을 위해 존재합니다.
‘정복하라’, ‘다스리라’는 말은 생명을 파괴하는 전쟁 용어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여기에서는 정 반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정복은 어둠과 죽음에 잠겨있던 창조 이전의 땅을 빛과 생명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다스리라는 명령은 폭력적 통치가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명들이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정치권력 남용으로 인한 생명의 피해를 수없이 경험했기 때문에 ‘다스리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타락 이전에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다스림의 권한은 평화와 생명의 질서를 유지하는 힘입니다.
하나님이 의도하신 다스림은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고후 4:4; 골 1:15; 히 1:3)에게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라는 가장 험악하고 낮은 자리에서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섬김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은 "나를 따르라"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섬기는 사랑. 이것이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이고 목적입니다. 군림하고 지배하는 것은 사람의 본성에 어긋나는 악한 다스림입니다. 반대로 낮은 자리에서 이웃들을 섬기는 사람은 자신의 선한 행실을 통해 삶의 만족감과 자존감을 누립니다. 겸손하게 섬기며 사랑하는 존재라는 의미에서만 사람은 만물의 영장(靈長)입니다.
톨스토이는 단편 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주인공인 구두 장인 시몬과 그의 아내 마트료나를 통해 사랑이 우리가 고된 삶을 살아가는 목적이고 힘이라는 주제를 참으로 따뜻하게 표현했습니다. 시몬과 마트료나는 추운 겨울날 하늘에서 내려와 길거리 모퉁에서 알몸으로 떨고 있는 불쌍한 천사 미하일을 집으로 데려와 먹여주고 재워줄 뿐 아니라 일을 가르쳐 자신의 조수로 함께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미하일 천사를 가르치기 위해 땅 위에 사는 착한 시몬과 미트료나에게 보내셨습니다. 톨스토이는 하늘의 천사들도 사람도 연약한 자를 섬기는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복음의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높은 자리에서 지배하고 군림할수록 사람 구실을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삶의 목적에 어긋나기에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창조 이야기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분명한 목적이 있음을 강조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처럼 겸손하게 섬기는 사랑이외의 다른 것이 아닙니다. 섬김은 굴종이 아니라 행복의 지름길입니다. (글/이효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