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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이야기 8: 공존하는 세상

by 이효재

<창세기 1:24~28>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하루하루 먹고사는 일이 거의 전쟁입니다. 경쟁은 시대정신이 되었고, 생존은 각자의 책임으로 떠넘겨졌습니다. 직장인은 아무리 대우가 좋은 회사라 해도 출근길부터 퇴근할 때까지 긴장 속에서 일해야 합니다.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두려움으로 일터와 일상의 편안함은 여유 있는 자들의 사치가 되어버렸습니다. 아무도 불안감 없이 먹고살지 못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곳은 산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수도원입니다. 외부로부터 무상으로 공급받지 않으면 하루도 생존할 수 없는 수도원이지만, 그곳에 가면 생존의 두려움에서 해방됩니다. 안심하고 내 몸을 맡길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대가 없이 먹을 양식과 필요 물품들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수도원에게 있는 것은 하나님이 먹여 살려주신다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수도원을 사랑하는 것은 세상에서 지친 영혼을 잠시라도 달래고 평안과 안식을 경험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수도원은 미니어처 에덴동산 같습니다. 사실 수도원은 우리가 갈망하는 세상의 모델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서로 빼앗고 성취하는 각자도생의 경쟁이 아닌 서로 섬기고 사랑하며 공존하는 삶의 기쁨을 맛봅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은 원래 그런 곳이었습니다.


지금 우리 생태계는 하등 동물부터 고등 동물까지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로 연결돼 있습니다. 동물은 식물을 먹고, 큰 물고기는 작은 물고기를 먹고, 강한 동물은 약한 동물을 먹고 삽니다. 사람은 생명이 있는 다른 동물들을 먹고 살아갑니다. 먹이사슬은 세상이 타락한 결과이지 하나님이 그런 세상을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동물을 먹이기 위해 창조의 셋째 날 이미 먹을거리를 만들어놓으셨습니다. 사람에게는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양식으로 주셨습니다. 씨는 생명의 재생산을 상징합니다. 동물에게는 푸른 풀을 양식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서로 해치지 않아도 각자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는 생명의 양식을 넉넉히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가 살기 위해 타인의 것을 빼앗는 잔인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평화를 상실한 이 세상에서 평화를 찾기 위해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먹고 살아갈 것을 주신다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내려주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습니다.


타락한 세상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움 없이 먹고 살아가려면 반드시 먹어야 할 양식이 있습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요 6:51).” 생명의 떡으로 오신 예수님의 살과 피입니다.


예수님의 주시는 떡을 먹는 성도들은 잃어버렸던 창조의 상상력을 회복합니다. 열심히 일해서 먹고 살아가되 생존의 불안함으로 인한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에 대한 믿음에서 나오는 일심입니다. 믿음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번 것을 독차지하지 않고 필요한 이웃들과 나눕니다. 예수님의 떡을 먹은 초대 교회 성도들은 자기 재산을 팔아 가난한 성도들을 먹여 살렸습니다(행 2:44~46; 4:34,35).


세상의 경쟁은 양식의 부족이 아니라 더 많이 가지려는 탐욕에서 일어납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이 주신 양식으로 충분합니다. 생명의 떡을 먹는 사람은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감사한 마음으로 일해서 먹고 삽니다. 이런 사람은 경쟁의 두려움이 없습니다. 타인의 몫을 함부로 넘보지 않습니다.


지난 세기 중반에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유명한 명제를 남긴 영국의 경제학자 E. F. 슈마허(Schumacher)는 버마(지금의 미얀마)의 농민들이 작은 기술로 식량을 생산하고 함께 나누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경제 공동체를 목격하고 이들의 겸손과 협력이 빚어내는 공존의 지혜를 세상에 알렸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미얀마는 부패한 권력자들이 작고 아름다운 공동체를 파괴하고 추악한 탐욕의 세상으로 변질시켰습니다. 기독교 가치를 경제 현실에서 철저하게 배제하고 각자 자기 능력껏 일해서 먹고 살아가는 서구의 불신 문화가 짓밟은 결과입니다.


예수님의 떡을 먹는 사람들은 이런 세상에 맞서야 합니다. 다른 세상을 살기 위한 믿음과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당장 우리가 해야 할 믿음의 실천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불안과 싸우는 것입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다 알고 내려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마 6:31,32). 나눔과 공존은 이 믿음에서 나옵니다. (글/이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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