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1~3>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하루 종일 일하고 퇴근 시간이 가까이 오면 우리는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습니다. 긴장과 피곤이 뒤섞인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은 어쩐지 내 인생이 아닌 것처럼 느껴집니다. 회사를 떠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내 삶으로 돌아오는 것 같은 행복감을 느낍니다.
일의 효율과 효과를 중시하는 현대 사회에서 쉼은 일하기 위한 보조수단쯤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잠시 쉬면서 내일 일할 수 있는 에너지를 비축하는 목적으로 쉼의 시간을 확보하려고 합니다. 원기 넘치는 몸과 마음으로 일하기 위해 적절한 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에 담겨있습니다.
지나치게 일 중심적으로 삶을 바라보면 쉼은 일의 보조수단의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창조 이야기는 반대로 일은 안식하기 위한 수단임을 강조합니다. 일 중심 문화는 하나님의 창조 정신에 어긋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하라는 소명을 주실 때 일의 궁극적 목적은 안식이라는 진리가 창조 이야기에 담겨있습니다.
창조의 일곱째 날, 하나님이 안식하셨습니다. 칠일 동안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는데 마지막에 하신 일은 안식하신 것이었습니다. 안식은 창조의 결론이자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안식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시고 그에게 ‘정복하고 다스리라’ 일의 소명을 주셨는데, 이 일은 안식하는 세상을 위한 수단입니다. 사람은 일하기 위해 안식하는 것이 아니라 안식하기 위해 일합니다.
하나님의 안식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하는 안식일 계명의 근거가 되었습니다(출 20:11). 하나님이 안식하셨으니 사람도 그날에는 일하지 않고 안식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은 일을 중단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서로 사랑할 때 누릴 수 있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이 날을 복 주셨는데, 이는 힘든 노동으로 수고하는 사람들에게 삶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하여 주신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일만 하는 노예가 아니라 안식의 기쁨을 누리며 사랑받는 하나님의 자녀로 창조되었습니다. 안식이 존재의 목적입니다.
안식일(주일)은 그냥 쉬는 날이 아니라 성찰하는 날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이 안식일(주일) 예배입니다. 예배에 참여하면서 우리는 말씀을 듣고, 정신없이 달려왔던 엿새 동안의 삶을 되돌아보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고 있는지 삶을 재정비하고, 잘못된 궤도를 수정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일하며 살기를 다짐하고, 그렇게 살도록 도움을 간구합니다.
안식일(주일)을 지키는 사람은 내가 누구인지 잊지 않습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압니다.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삶의 방향과 의미를 발견하고 유지하기 원한다면 일을 중단하고 안식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이 2000년 가까이 조국을 잃어버리고 온 세상에 떠돌면서도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고 지금의 이스라엘을 건국할 수 있었던 힘은 그들이 안식일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신앙생활에서 나왔습니다. 20세기의 존경받는 유대 랍비 아브라함 죠수아 헤셀(Abraham Joshua Heschel)은 "유대인이 안식일을 지킨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유대인을 지켰다"라고 말했습니다.
안식일(주일)은 종교적인 일로 분주하게 지내는 날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축제의 즐거움을 경험하는 날입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결코 혼자 외롭게 보내지 않고 가족 친척 친구 사람들과 함께 풍성한 음식을 먹으며 대화하고 사랑을 나눕니다. 그들은 안식일마다 펼쳐지는 작은 축제의 기쁨을 맛보면서 모진 고난의 역사에서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현대인들이 가장 많은 불안과 염려로 안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식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인데 돈으로 사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물론 안식은 그냥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돈이 아닌 끈질긴 영성 훈련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안식하려면 우리를 안식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을 믿고 내면의 불안과 불신과 불만과 싸워야 합니다. 쉼 없이 일을 계속하면 끝없는 불안이 마음을 지배합니다. 그러나 일을 중단하면 불안이 물러갑니다. 일을 중단하되 우리가 먹고사는 것이 근원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을 때 안식이 찾아옵니다.
내가 불안하면 주변 사람들도 불안하고, 내가 안식하면 주변 사람들도 안식합니다. 굳은 믿음과 의지로 안식일(주일)을 지켜야 삶이 가볍고 평화로워집니다. (글/이효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