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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이야기 13: 안식과 노동

by 이효재

<창세기 2:15~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일해서 먹고산다는 것은 거룩한 일입니다. 노동은 거룩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명입니다. 나의 노동도, 당신의 노동도, 모든 사람의 노동도 세상을 생명으로 충만케 하는 거룩한 사랑의 수고입니다. 우리 각자의 작은 노동이 모두 합쳐져 배불리 먹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 곧 안식하는 세상을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세상은 내가 살기 위해 상대와 싸우고 상처 주는 불안한 세상입니다. 안식을 잃어버렸습니다. 작년에 배송작업을 하다 사망한 쿠팡 노동자 고 정슬기 씨 유가족들과 시민단체들은 오랫동안 쿠팡과 싸워왔습니다. 어제는 그동안 외면하고 침묵하던 쿠팡이 사과를 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을 약속했습니다. 먹고살다 잃어버린 안식을 회복해 달라는 당연한 요구가 왜 이리도 힘든 싸움이 되어야 할까요?


매년 수많은 노동자들이 빠른 배송을 요구하는 고객들과 회사의 요구를 따르다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신의 안식을 위해 사람에게 쉼 없는 노동을 강요하는 바벨론의 마루둑 신화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성경의 창조 이야기를 통해 안식을 위한 노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아담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그를 에덴동산에서 쉬게 하셨습니다. 15절의 ‘두어’라는 동사는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쉬셨다(출 20:11)”는 말씀의 ‘쉬셨다’는 히브리 동사 ‘누아흐’와 같은 단어입니다.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안식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두 가지 소명을 주셨습니다. 동산을 경작하고 지키는 것입니다. 아담의 안식하는 삶은 이 두 가지 소명을 성실하게 수행하느냐에 달렸습니다.


‘경작하라’는 소명은 먹고살기 위해 일하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에 나무를 만들고 강물로 적셔서 양식이 나게 하셨지만 땅을 경작하고 양식을 수확하는 일은 아담이 감당해야 할 노동의 소명입니다.


우리의 모든 노동은 하나님이 땅을 통해 주시는 양식을 얻기 위해 일하는 것이지 사람 스스로 생명의 양식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생명의 양식을 얻기 위해 일터에서 일하는 것은 하나님의 소명에 순종하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노동은 하나님의 축복을 내 손으로 거두는 것입니다.


‘지키라’는 소명은 에덴동산 한가운데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않는 것입니다. 이 열매를 먹는 사람은 에덴동산을 주신 하나님을 외면하고 자기 생존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고, 불의한 일을 하고, 생명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악을 선으로 정당화합니다.


선악과의 배후에는 사탄이 있습니다. 사탄은 섬김과 사랑을 요구하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것이 우선이라고 속삭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악과로 유혹하는 사탄으로부터 에덴동산을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에덴동산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아담의 후예인 우리도 하나님이 주신 일터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경작해서 먹고사는 일이 고통스러워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서로 사랑하며 축복하는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주시지만, 사탄의 유혹은 이웃을 잠재적 원수로 여기고 삶을 생존 경쟁의 전쟁터로 만듭니다.


하나님은 안식하는 삶을 위해 경작하고 지키라고 하셨지만, 우리는 끝내 안식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가 일하는 궁극적 목적은 생존을 넘어 안식하는 삶입니다. 이제 우리가 안식하기 위해서는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마 12:8)의 말씀에 순종하며 일해야 합니다.


현대 사회는 안식하는 삶을 보장하지 않는 구조적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안식은 중단하고 성찰하는 침묵의 시간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합니다. 제철소의 용광로처럼 노동의 스위치를 끄지 못하는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에 갇혀 끊임없는 노동 속에서 삶의 의미를 상실한 것이 노동자들의 가장 큰 비극입니다.


안식을 회복하려면 재독 철학자 한병철이 제안했던 것처럼, 잠시 중단하고 서서 자신의 일과 삶을 성찰하고 의미를 찾는 '향기로운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침묵하며 그분의 은혜 안에 잠기는 고요한 시간이 나를 살립니다. 스마트폰과 스마트 시계에서 잠시 벗어나는 용기가 있어야 안식하는 노동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글/이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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