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보호센터 차가 골목에 들어설 때쯤. 허공에 흰 먼지가 떠 있었다. 먼지는 바닥으로 천천히 내려앉았다. 그렇게 첫눈이 왔다. 아스팔트 위에 금세 녹아버렸고, 나뭇가지 위에선 잠시 버텼다. 그 풍경을 말없이 바라보던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작은 회색 외투에 몸을 감춘 노인. 노인은 눈보다 느리게 움직였다. 멀리서 보면 마치 시간이 닿지 않는 장소에 혼자 서 있는 것 같았다.
낡은 주택은 오래된 초인종 소리를 냈다. 다 누르지도 않았는데 삐걱거리는 철 소리가 먼저 들렸다. 현관 앞에는 지팡이가 벽에 기대어 있었고, 녹슨 우산 하나가 차가운 바닥에서 엎드려 있었다. 누구도 치우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이제는 치울 이유가 사라졌는지도 모른다.
노인은 말수가 적었다. 아침이면 주전자에 물을 올리고, 텔레비전을 켜 노래 틀었다. 혼자 있는 집안은 음악이 흐르기보다 삼켜버리는 쪽에 가까웠다. 멜로디는 방 안 어디쯤에서 흐릿해지고, 가사는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렇게 하루가 흘렀고, 또 다른 하루가 닮은 얼굴로 따라왔다.
화장대 위에는 액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환한 미소를 띤 사내의 사진이었다. 그는 모래사장에 앉아 먼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진을 닦는 일은 없었지만, 먼지는 거의 쌓이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매일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한때는 두 사람이 있었다. 여름에는 선풍기 바람 아래서 참외를 먹었고, 겨울에는 전기장판 위에서 귤을 깠다. 비 오는 날이면 텔레비전 볼륨을 크게 키웠고, 눈이 오는 날이면 따뜻한 국물에 몸을 녹였다. 그런 순간들이 쌓여 일상이 되었고, 일상은 평범하게 흘렀다.
어느 날, 예고도 없이 한 사람이 사라졌다. 사라진다는 건 생각보다 조용한 일이었다. 밥솥에 남은 밥이 늘었고, 휴지가 떨어지는 속도가 느려졌으며 말수도 자연스레 줄어 들었다. 이런 것들은 빠르게 적응되었고, 남은 자리도 어느새 그 공백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상실에는 각자의 속도가 있다. 누군가는 즉시 울고, 누군가는 나중에 아파한다. 그리고, 어떤 상실은 너무 느려서 거의 느껴지지 않는 속도로 몸을 무겁게 만든다. 목뒤, 손끝, 가슴 아래 어딘가에서 조용히 무게를 키운다. 결국 모두가 적응한 듯 살아가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적응하지 못한 시간이 눌려 있다.
노인은 매일 센터에 간다. 처음에는 거부감이 있었다. 낯선 사람들과 말 섞는 일은 늘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매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샌가 누군가의 이름을 외우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 조금씩 편안해졌다. 새로운 사람들의 목소리가 익숙해질 무렵, 겨울이 찾아왔다.
다시 겨울. 첫눈이 오던 날처럼, 세상은 하얘졌다. 수년 전, 사내를 떠나보내던 날도 눈이 내렸다. 그날의 눈은 이상하게 따뜻했다. 지금도 눈이 내리면 노인은 걸음을 멈춰서서 사진 속의 사내를 떠올리며 말없이 눈을 감는다.
누군가의 부재는 갑자기 울컥 밀려오지 않는다. 눈처럼 천천히 내려와 마음 어딘가에 소복이 쌓인다. 치울 수 없이 아주 오래. 아주 조용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