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지를 쉽게 볼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손 안에서 세상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시대에 굳이 신문과 같은 구시대적 활자매체가 더 이상 필요할까 싶지만, 정보의 전달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써의 신문은 여전히 유용해서 시대의 변화가 아쉬울 따름이다. 전봇대의 텅 비어있는, 벌레 소굴과 길가의 나무와 같이 충분한 양을 표방하던 구인 구직 광고지의 함은 여전한 그 유용함을 반증한다.
과수원을 하던 어릴 적 본가에서는 신문지가 많이 필요했다. 신문은 습도를 조절하는 기능과 보온성이 뛰어나서 과일을 저장하는 데에도 유용했다. 당시 구독하던 신문사의 영업소에서 날짜가 지난 신문을 여러 상자씩 구매해오곤 했다. 당시 신문더미에 스며있는 기름 냄새가 싫지 않았던 것 같다.
이따금 매장에 신문을 가져다주는 여성이 있다. 그 신문은 용기를 강조하는 기조가 있는 종교단체의 것이다. 기조에 맞게 나이가 들었음에도 그분의 눈은 언제나 신념으로 가득 차 있다. 매우 가까운 일본의 지인 가족 전체가 그 종교의 신문에 관련되어 있었다. 특정 종교집단이 추구하는 것은 그 종교의 경전을 읽는 것 만으로 충분하다. 물론 기본적으로 종교에 대한 호기심이 있어야 경전도 읽을 수 있다. 불교에 뿌리를 두고 있음에도 그렇게나 다른 기조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렇다고 해도 종교들에 대해 흥미가 있을 뿐 심취할 수는 없는 성향이라 대충 정리하고는 관심이 사라졌다.
그분이 놓고 가는 신문은 매장의 폴딩도어를 닦는 데에 아주 유용하게 쓰이고 있었다. 지금도 물론 심하지만, 처음으로 지금과 비슷한 확진자 수가 나와서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을 무렵, 그분의 방문이 전혀 없었다. 신문의 부재를 핑계로 게으름을 감추고 한동안 폴딩도어를 닦지 않았다.
두어 달만에 그분이 오셨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신문이 너무나 반가웠던 나머지 나는 선을 넘어버렸다. 그분은 코로나 때문에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는 대답과 함께 돌아가셨고, 이후의 방문부터는 신문과 함께 여러 말을 남기고 가셨다.
'종교에 관심은 있지만, 그건 지적인 관심일 뿐이니 제게 포교할 생각은 하지 마세요.'라고 말씀드렸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것이 스스로 남은 생의 의무와 즐거움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포교하던 종교인들에 대한 어릴 적에 가졌던 반감은 생기지 않았다. 그냥 조금 귀찮은 정도.
가끔 동행을 데리고 설득하기도 하지만 목에 칼이 들아와도 종교활동을 할 생각은 없다. 차라리 인간적인 관계로 다가온다면 좋겠는데...
오늘은 동년배의 동행과 함께 레몬차를 주문했다.
쭈글쭈글한 챙의 꽃무늬 모자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역화폐로 결재되는 것에 감사하는 것이 조금 의아했다. 음료를 주문했다는 건, 좀 더 귀찮게 하겠다는 의미와도 같다. 미안한 해석이기도 하지만 분명히 그렇다.
매장 밖으로 나와 세워둔 바이크를 닦기 시작했다. 얼마 후, 그들은 레몬차가 뜨거워서 안에서 마시질 못하겠다는 핑계와 함께 바이크가 좋아 보인다 라는 말을 시작으로 나와 내게 말을 붙였다.
배부른 자에게 먹을 것으로 유혹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행동은 없다. 최고급 와인에 길들여져 있는 사람에게 다른 와인을 권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최고급 와인을 마시고 있는데, 심지어 그것에 길들여져 있다면 와인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는 그를 끌어당길만한 어떠한 매력도 없다.
그들은 내게 어떤 동영상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은연중에 자신의 나이가 70이 넘었다는 것을 강조하며, 설마 나쁜 것을 보여주겠며 그들은 내게 강요하기 시작했다.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존대를 하는 이유는 단지 사회의 풍조 때문이지, 그 사람을 높이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손 아랫사람에게 존대를 하는 이유는 내 나이가 많다는 것이 그들에게 하대를 하거나 그들로 하여금 존대를 하게 할 그 어떤 가치도 존재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거절했다.
'나는 충분히 행복하고, 더 나은 행복을 바란다면 그것은 과한 욕심이다. 더 이상의 욕심도 없고, 지금까지의 삶에 만족하며 전혀 일말의 후회도 없기 때문에 갑자기 목숨을 잃는다고 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내가 위험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바이크를 타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는 의미의 말을 나름 순화시켜서 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 끈기를 높게 평가하고 휴대폰의 영상을 봤다. 코로나 시대에 대한 고통을 필두로 하는 영상이 시작되었다. '거리두기 탓에 몸이 멀어지고, 때문에 마음이 멀어진다.'는 대목에서 동영상을 멈추고 그들에게 말했다.
'몸이 멀어진다고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것을 단정하는 것은 잘못된 말인 것 같습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은 더욱 애틋해지며, 몸이 멀어졌다고 해서 마음이 멀어지는 사이라면 애당초 마음의 거리는 그 정도인데 상황 탓에 억지로 가까이 있었던 것뿐일 것입니다. 그건 마치 여행을 가지 못하게 된 지금의 사람들이 더더욱 여행을 갈망하게 된 것과 같습니다.'
말을 끝낸 후 그들의 당황하는 표정을 즐겼다. 나는 돌직구에 타인이 당황하는 모습을 즐긴다. 목적 없는 부정보다는 구체적으로 무엇이 다르다는 것을 알린다면 처음에는 당황스러울지도 모르지만 서로를 이해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따라서 당황하는 모습뿐만이 아니라 이해하는 과정까지도 즐긴다고 말하고 싶다. 가장 즐거운 건 당황하는 표정을 보는 것이지만...
유쾌한 마음으로 남은 영상을 보았다. 그리고 방법은 알려주지 않고 단지 '길을 찾으라'하는 문구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말하며 책꽂이에서 책을 꺼내왔다.
'이것은 내게 있어서 성서와 같습니다.' 사실 성서라고 하기엔 조금 진부하지만 무작정 길을 찾으라는 말보다는 몇 차원은 더 진리에 가깝다.
책의 저자는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유명한 아이작 뉴턴이며(이 대목에서 그들은 알고 있다며 맞장구 쳐주었다.), 총 3권으로 되어있는 이 책은 20세기 초반까지 세상의 진리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담은 것이라고 프린키피아에 대한 설명을 간단하게 늘어놓았다.
거시 세계의 물리법칙을 놓고 보면 우린 그냥 큰 흐름에 속해있는 아주 작은 존재이다. 미시세계의 물리법칙을 놓고 보면 우리는 존재 자체에 의미를 가져야 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다. 때문에 개개인의 행복이나 불행과 같은 감정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 책은 거시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시발점이고 그걸 이해하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책을 빌려달라길래 거절했다. 책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다. 내 책은 오롯이 내 것이다. 첨삭을 하는 것도, 구기는 것도, 타인의 손을 타는 것도 싫다. 제목을 사진 찍도록 했다. 본인만 읽지 말고 손녀 손주 분들이 있다면 꼭 보여주라고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어릴 적에 누군가 그 책을 내게 권했다면, 세상을 보는 눈이 훨씬 빨리 달라졌을 텐데...
타인에게 설교를 한다면 설교를 당할 각오도 해야 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